전북도가 도약의 전기를 맞고 있다. 농생명산업, 수소산업 등 핵심 전략산업이 속속 추진되고, 새만금개발 등 대형 프로젝트가 잇따라 가시화되고 있다. 그러나 개발의 이면에는 언제나 이해관계 충돌이 존재한다. 개발과 보존, 성장과 복지, 산업과 환경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문제는 그 갈등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런 점에서 전북도의회 국주영은 의원이 발의한 ‘전북특별자치도 숙의민주주의 실현 및 활성화 조례’는 시의적절하면서도 매우 의미 있는 시도다.
지금까지의 정책 결정 구조는 행정과 전문가 중심의 일방통행식이었다. 도민 의견 수렴 절차가 형식적으로 이뤄지거나 일부 이해집단의 목소리에 치우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런 방식은 사회적 갈등을 키우고 행정 불신을 초래해 왔다. 반면 숙의민주주의는 충분한 정보 제공과 심도 있는 토론을 통해 도민 스스로 공론을 형성하고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오늘날 대의민주주의만으로는 다원화된 사회의 다양한 이해와 요구를 온전히 반영하기 어렵다. 선출된 대표만으로는 급변하는 사회 문제와 지역 현안에 즉각 대응하는데 한계가 있다. 숙의민주주의는 이러한 한계를 메우고 도민이 직접 정책 과정에 참여해 스스로의 삶과 지역의 미래를 함께 설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번 조례안은 구체적 실행 기반도 충실히 담고 있다. 숙의민주주의 활성화를 위한 기본계획 수립, 행정·재정 지원의 책무를 도지사에게 부여하고 주요 정책 현안에 대한 공론화 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했다. 또한 다양한 참여 형식을 제도화함으로써 도민 누구나 정책 과정에 접근할 수 있도록 열어두었다.
이 조례가 제대로 시행된다면 개발사업이나 환경문제, 복지정책 등 각종 민감한 현안에서 발생하는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간 공공정책의 실패는 대체로 ‘절차의 부재’에서 비롯됐다. 충분한 숙의와 공론화가 보장되지 않은 정책은 결국 시행 단계에서 저항에 직면한다. 숙의민주주의는 바로 이 악순환을 끊는 가장 현명한 해법이다.
무엇보다 이번 조례가 지향하는 가치는 도민이 도정의 주인이 되는 길을 제시한다는 데 있다. 행정이 도민에게 정책을 ‘설명하는 단계’를 넘어 ‘함께 만드는 단계’로 나아갈 때 비로소 전북특별자치도는 이름에 걸맞은 자치와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제도의 성패는 실행력에 달려 있다. 조례 제정 이후에도 행정의 의지, 예산 확보, 공론화 위원회의 독립성과 전문성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이 제도는 장식품에 그칠 공산이 크다. 따라서 전북도는 숙의민주주의를 실질적 도정 시스템으로 정착시키기 위한 구체적 실행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번 조례안은 갈등의 시대를 대화와 합의의 시대로 전환시키려는 전북의 성숙한 정치 실험이다. 도민의 뜻이 행정의 중심에 자리 잡을 때 전북의 미래는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도의회가 이 조례를 신속히 안착시켜 숙의민주주의가 전북자치도의 새로운 행정 문화로 뿌리내리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