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각자도생의 시대, 한반도는 자강 평화가 길이다(2)
    • 조성렬 칼럼 / 경남대 군사학과 초빙교수
    • 평화 담론의 하나로 양국체제론에 따른 평화공존(Peaceful Coexistence)론에 대해서도 성찰이 필요하다. 고전적인 평화공존론은 1920년대 레닌이 처음 제기한 것으로, 이후 핵위기가 고조되면서 1956년 제20차 소련 공산당대회에서 흐루시쵸프 서기장이 공식화한 것이다.

      이는 △전쟁회피와 핵억제, △비군사적 경쟁, △주권존중과 내정불간섭 등 3가지 원칙을 기본으로 한다. 과거 남북대화 과정에서 우리측이 ‘남북 평화공존’이라는 용어를 쓸 때마다 북측이 ‘두 개의 조선 책동’이라고 비난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이처럼 고전적 평화공존론은 출발부터 ‘주권국가 간 관계’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부가 ‘한반도 평화공존의 원년’을 선포한 것 자체가 남북한의 ‘2국가관계’를 인정한 것으로 잘못 비칠 우려가 있다.

      원래 취지가 평화통일의 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고전적인 개념을 그대로 쓸 것이 아니라 한반도 상황에 맞게 중장기적 통일의 목표를 포함하는 내용으로 ‘한반도 평화공존’을 재정의해서 사용해야 할 것이다.

      민주진보진영의 평화 담론도 단일하지 않다. 평화 담론을 군축평화론과 자강평화론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군축평화론은 기본적인 뿌리를 서구 진보진영의 평화론에 두고 있다. 군축평화론은 강대국의 제국주의 확장정책을 반대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것이지만, 제국주의 확장과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일 수밖에 없는 중견국 또는 약소국의 평화론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서구 중심의 평화 담론과 중견국·약소국의 현실적인 평화론은 ‘전쟁 반대’라는 슬로건은 공유하지만, 그 동기와 목표 그리고 평화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론에서 큰 차이가 있다. 동기와 목적에서 전자는 제국주의 견제, 후자는 생존과 자결에 두고 있다. 또한 방법론에서 전자가 군비통제에 치중하는 데 비해, 후자는 억제력을 위한 자주국방을 중시하고 있다.

      서구의 평화론은 주로 강대국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자국 정부의 팽창적 외교정책이나 군사개입을 비판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이는 제국주의적 속성에 대한 도덕적·윤리적 반성이자, 전쟁 비용과 자국 군인의 희생을 줄이려는 내부적인 동기가 강하다.

      이에 비해 자강평화론에선 평화가 도덕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생존과 주권의 문제이다. 강대국의 각축장이 되어 주권을 침탈당하거나 경제적 예속이 심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자기방어적’ 평화론이다. 즉, 평화가 곧 ‘자결권’과 직결된다.

      군축평화론은 군사적 맥락에서의 억제력(Deterrence)이 군비경쟁을 유발하고 전쟁의 위험을 높인다고 보며 군비통제를 중시하고 있다. 이에 비해, 자강평화론은 완전한 자주국방까지는 어렵더라도 강대국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억제력은 필수적이라고 인식한다. 이들에게 무조건적인 군축은 강대국 패권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군축평화론이 ‘강자의 자제’를 촉구하는 담론이라면, 자강평화론은 ‘약자의 생존’을 위한 전략적 투쟁에 가깝다. 따라서 냉혹한 현 국제정세 속에서 전쟁의 최대 피해자인 중견국·약소국 입장에서는 서구적인 평화군축의 논리가 공허하거나 현실과 동떨어져 보일 수 있다.

      역대 민주진보정부는 자강평화론의 입장에 서 왔다. 어느 보수정부보다도 많은 국방비와 첨단 무기개발에 힘써 온 것이다. 한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과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화학무기금지협약」, 「생물무기금지협약」 등 대량살상무기 금지 조약·협약에 가입했다.
      하지만 「대인지뢰금지협약」, 「집속탄금지협약」과 「핵무기금지협약(TPNW)」에 대해 민주진보정부도 가입을 미루었다. 이는 남북분단과 미국의 핵억제력에 의존하는 현실적인 안보상황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일부 진보진영에서는 서구적 군축평화론을 내세워 민주진보정부의 국방비 증액과 첨단 무기개발과 도입, 나아가 일부 조약 미가입에 부정적 시각을 나타내고 있다. 현무-V 탄도미사일, 원자력추진 잠수함, 경항공모함의 개발에 대해 북한을 비롯한 주변국들을 자극해 군비경쟁을 촉발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강대국 환상에 취한 국가적 허영’이라거나 심지어 미국의 하위 파트너로서 지역 패권을 분담하며 제국주의적 질서유지에 동원되는 ‘아제국주의’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중견국가 한국이 처한 실존적 안보 위기를 철저히 외면한 서구 진보주의적인, 혹은 교조적인 해석에 불과하다. 한국의 자강평화론을 강대국 환상, 아제국주의라는 비난은 ‘중견국은 스스로를 지킬 권리가 없으며 오로지 강대국이 짜놓은 제도적 틀 안에서만 숨 쉬어야 한다’는 또 다른 형태의 제국주의적 논리일 뿐이다.

      한국의 자강평화론은 주변 강대국들의 강압외교로부터 국가주권과 국민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전략적 거부권’을 확보하려는 노력임을 알아야 한다.

      최근 국제정세의 위기 속에서 각국은 각자도생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자강평화를 내세운 억제력도 ‘안보딜레마’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과도한 군사력 증강은 피해야 한다.

      하지만 자강을 위한 노력이 바탕이 되어야만 진정한 한반도 평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 북한도 냉혹한 국제현실을 고려해 움직이는 만큼, 우리도 자강평화를 추구할 때 한반도 평화공존의 길도 열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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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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