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각자도생의 시대, 한반도는 자강 평화가 길이다(1)
    • 조성렬 칼럼 / 경남대 군사학과 초빙교수
    • 병오년 새해 벽두부터 국제정세가 뒤숭숭하다. 1월 3일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로 미 특수부대가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을 현지에서 전격 체포해 미국으로 압송했다. 이튿날 아침 북한군이 이재명 대통령의 방중을 겨냥해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데 이어, 외무성이 베네수엘라 사태에 대해 “난폭한 주권침해와 국제법 위반”이라고 미국을 비난했다.

      그런 가운데 1월 2일 정동영 장관은 통일부 시무식에서 올해를 ‘한반도 평화공존의 원년’으로 선포하고 한국정부가 먼저 변화하고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북·미 회담을 남북대화 재개의 계기로 삼으려는 우리 정부의 구상도 난관에 봉착했다. 북한의 최근 행태로 볼 때 4월 북·미 정상회동이 있더라도 성과 도출이 쉽지 않은 것은 물론, 성사 자체도 불확실해 보이기 때문이다.

      국제정세의 불확실성과 남북관계의 단절 속에서 우리나라의 안보전략은 근본적인 도전에 직면해 있다. 지금까지 한반도의 평화 담론은 주변국 관계보다 주로 북한과의 평화체제 구축에 초점이 맞춰져 왔지만, 최근 국제 안보정세의 흐름은 더 이상 기존 평화패러다임이 작동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정부가 새롭게 내건 ‘평화공존’의 정책기조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 민주진보진영은 이념을 넘어선 민족, 분단을 극복하는 통일 담론을 제기하며 보수진영과 차별화해 왔다. 조봉암의 진보당이 내건 평화통일론, 4.19혁명 직후 혁신계 정당들의 중립화통일론, 그리고 1971년 김대중 대통령후보의 3단계 통일론이 이러한 흐름을 이었다. 이러한 통일론은 ‘선건설 후통일’을 내걸며 적대적 공존을 추구한 박정희 정부로부터 극심한 탄압을 받아왔다.

      1990년대 들어와 김대중 후보는 3단계 통일론을 발전시켜 ‘사실상의 통일’을 내세우며 남북연합론을 구체화했다. 남북연합론은 평화공존의 2국가관계를 잠정적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과 4개국 교차승인을 제시했다.

      이후 민주진보진영에서는 점차 통일보다는 평화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특히 노무현 정부 때부터 국정과제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내걸면서 평화의 제도화를 당면 정책과제로 제시했다.

      체제경쟁에서 뒤처진 북한은 2016년 제7차 당대회에서 통일에 대한 회의적인 입장을 밝힌 이후 핵·미사일 개발을 노골적으로 추진하며 마침내 2017년에는 대륙간탄도미사일과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하고 이른바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언하였다. 이와 같은 안보위기 상황에서 전쟁 재발을 막고 한반도 평화를 추구하는 평화 담론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지지를 받으면서, 당위적 통일론은 더욱 설 자리를 잃었다.

      이 과정에서 민주진보진영 내에서 분단체제론-양국체제론 논쟁이 일어났다. 분단체제론이 평화공존을 거쳐 남북연합을 수립해 ‘사실상의 통일’을 이룬 뒤 통일국가로 가야 한다고 본 데 비해, 코리아 양국체제론은 평화공존 자체를 목표로 보고 남북관계의 미래도 단일한 민족국가가 아니라 열려있다고 보았다. 이처럼 민주진보진영 내부에서 당위적 통일론에서 평화공존론으로 전개되면서 2국가론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었다.

      그런 가운데, 남북의 국력 격차가 더욱 확대되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보수진영에서는 이승만의 북진통일론을 닮은 흡수통일 담론이 등장했다. 이명박 정부의 3대 공동체 통일구상과 통일항아리 운동, 박근혜 정부의 통일대박론과 전국 단위의 통일준비위원회 조직, 그리고 자유의 북진을 내세운 윤석열 정부의 8.15통일독트린이 나온 것이다.

      과거 민주진보진영이 통일 담론은 주도했지만 평화 담론에 치중하면서 이제는 보수진영에게 그 주도권이 넘어가고 있다. 현 국제정세나 한반도 상황을 볼 때, 통일을 추구할 단계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평화’를 최우선의 가치로 삼는 것은 올바른 판단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민족의 숙원인 ‘통일 담론’의 주도권을 보수진영에게 넘겨줘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보수진영은 진정한 의미에서 통일을 추구하기보다는 흡수통일, 기껏해야 분단을 통해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는 데 연연해 왔기 때문이다.

      평화 담론의 하나로 양국체제론에 따른 평화공존(Peaceful Coexistence)론에 대해서도 성찰이 필요하다. 고전적인 평화공존론은 1920년대 레닌이 처음 제기한 것으로, 이후 핵위기가 고조되면서 1956년 제20차 소련 공산당대회에서 흐루시쵸프 서기장이 공식화한 것이다.

      이는 △전쟁회피와 핵억제, △비군사적 경쟁, △주권존중과 내정불간섭 등 3가지 원칙을 기본으로 한다. 과거 남북대화 과정에서 우리측이 ‘남북 평화공존’이라는 용어를 쓸 때마다 북측이 ‘두 개의 조선 책동’이라고 비난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이처럼 고전적 평화공존론은 출발부터 ‘주권국가 간 관계’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부가 ‘한반도 평화공존의 원년’을 선포한 것 자체가 남북한의 ‘2국가관계’를 인정한 것으로 잘못 비칠 우려가 있다. 원래 취지가 평화통일의 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고전적인 개념을 그대로 쓸 것이 아니라 한반도 상황에 맞게 중장기적 통일의 목표를 포함하는 내용으로 ‘한반도 평화공존’을 재정의해서 사용해야 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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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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