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도권 초집중의 그늘 – 지방 소멸은 국가 위기다
    • 김관춘 칼럼 / 주필
    • 전북특별자치도의 지방소멸 위기가 통계로 다시 한번 확인됐다. 좋은정치시민넷(대표 손문선)이 최근 2025년 전국 자치단체 지방소멸위험지수를 분석한 결과, 2025년 기준 전북의 지방소멸위험지수는 35.0으로 ‘경계 단계’에 머물렀고, 도내 14개 시·군 중 무려 8곳이 ‘위험 단계’에 진입했다.

      전주시마저 지수 하락세가 뚜렷해지고, 익산·군산·정읍·김제·완주 등 핵심 거점 도시들이 ‘경계 단계’로 밀려났다는 사실은, 전북이 더 이상 인구 문제의 변방이 아니라 한복판에 서 있음을 시사한다. 지방소멸은 통계상의 경고음이 아니라, 지역의 존립을 좌우하는 실존적 위기다.

      지방소멸위험지수는 단순한 인구 감소가 아니라 사회·경제·공간 구조의 붕괴 가능성을 예고하는 지표다. 20~39세 여성 인구와 고령 인구 비율을 기반으로 산출되는 이 지수는 지역 사회의 재생산 가능성을 측정하는 핵심 척도다.

      청년 여성 인구가 줄어드는 지역은 출산율 하락, 노동력 부족, 소비 기반 축소, 지방재정 악화라는 악순환에 빠질 수밖에 없다. 전북의 지수가 하락했다는 것은 이 악순환이 이미 구조적으로 작동하면서 고착화되어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군 단위 지역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임실군을 비롯해 진안·무주·장수·임실·순창·고창·부안 등 7개 군이 모두 ‘위험 단계’에 포함됐다. 남원시 역시 위험 단계에 진입했다. 이는 농촌 지역이 단순히 인구가 줄어드는 수준을 넘어, 지역 사회 유지 자체가 어려운 ‘기능 상실 단계’로 접어들고 있음을 뜻한다.

      학교, 병원, 상점, 문화시설 등 행정 서비스가 유지되지 못하면 주민의 삶의 질은 급격히 하락하고, 이는 다시 인구 유출을 가속하는 자기 증폭이라는 악순환의 구조를 형성한다. 이러한 구조를 혁파하지 않으면 더 이상의 희망을 기대하기 어렵다.

      전국적으로도 소멸 위험 지역은 65곳으로 늘어났다. 수도권 집중은 더욱 가속화되고, 지방의 인구 기반은 빠르게 붕괴되고 있다. 이는 한국 사회의 발전 모델이 수도권 초집중 구조에 고착되었음을 방증한다.
      문제는 이 구조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데 있다. 수도권의 주거비 폭등, 교통 혼잡, 환경 부담이 한계에 도달하는 반면, 지방은 빈집과 유휴시설, 폐교와 의료 공백이 늘어나는 극단적 양극화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정부는 한 해 1조 원에 이르는 지방소멸대응기금을 비롯해 각종 재정 지원 정책을 다양하게 추진해 왔다. 그러나 인구 감소의 거대한 흐름을 재정 투입만으로 되돌리기에는 한계가 명확하다. 일자리가 없고, 교육과 의료 인프라가 취약하며, 문화와 주거 환경이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청년과 가족이 지방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 지방소멸은 예산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공간 구조와 성장 전략의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이제부터는 정책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수도권 진입장벽을 강화하고 지방으로의 분산을 유도하는 실질적 정책이 필요하다. 수도권 기업과 대학, 공공기관에 대한 진입장벽 강화 및 추가 집중을 제한하고, 지방 이전 기업에는 파격적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를 제공해야 한다. 단순한 보조금 지원정책이 아니라 입지 결정의 경제적 유인을 바꾸는 유연한 정책 설계가 요구된다.
      둘째, 공공기관 2차 이전을 넘어 지역 특화 산업과 연계한 ‘혁신 거점’ 전략이 필요하다. 전북은 농생명, 신재생에너지, 수소, 로봇·AI 제조, 바이오 등 잠재력이 큰 분야를 보유하고 있다.

      공공기관 이전을 이들 산업과 결합해 연구개발, 인력 양성, 기업 유치를 연쇄적으로 촉진하는 클러스터 전략이 필요하다. 단순한 기관 이전은 인구 유입 효과가 제한적이지만, 산업 생태계와 결합될 때 지속 가능한 인구 기반을 창출할 수 있다.

      셋째, 공간 전략의 전환이 시급하다. 인구 감소 시대에는 도시를 무작정 확장하는 방식이 아니라 도심 기능을 집약하는 ‘압축도시(Compact City)’ 전략이 필요하다. 생활 서비스, 의료, 교육, 문화, 주거를 중심지에 집중 배치하고 대중교통과 보행 중심 도시 구조를 구축하면 인구 감소 속에서도 효율적 도시 운영이 가능하다. 이는 일본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 이미 채택한 현실적 대안이다.

      넷째, 주민등록 인구를 넘어 ‘생활 인구’ 개념을 정책에 적극 반영해야 한다. 정주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관광, 워케이션, 원격근무, 귀농·귀촌 체험 인구 등을 지역 경제의 새로운 기반으로 활용해야 한다. 디지털 인프라와 공유 주거, 지역 기반 플랫폼을 통해 ‘머무는 인구’를 확대하는 전략은 지방의 새로운 생존 모델이 될 수 있다.

      다행히 장수·순창·김제·완주 등 일부 지역에서 청년 여성 인구 증가와 지수 개선이 나타난 것은 정책 효과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는 아직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인구 정책은 단기간 성과를 내기 어렵고, 최소 10년 이상의 일관된 전략이 필요하다. 지방소멸 대응은 정권과 정치 주기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생존 전략의 문제다.

      지방이 붕괴되면 국가는 지속될 수 없다. 전북의 소멸 위험 지수는 단순히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공간 구조의 경고등이다. 지금의 정책적 안일함은 미래 세대에게 돌이킬 수 없는 비용을 남길 것이다. 재정 투입 중심의 미봉책을 넘어 구조적 대전환을 실행하지 않는다면, 지방소멸은 더 이상 위험이 아니라 현실이 될 것이다. 지금이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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