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청산② 우리 민족은 유난히 자식에 대한 사랑이 깊다. 부모 세대는 스스로를 희생해서라도 자식만큼은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란다. 그 마음은 숭고하고 아름답다. 그러나 그 사랑이 왜곡된 선택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작동하는 순간, 우리는 불편한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일제강점기 일부 조선인들은 나라를 등지고 식민 권력에 협력했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개인의 안위뿐 아니라 가족과 자식의 생존, 더 나아가 번영을 이유로 들었다. 나 하나 욕을 먹더라도 자식만 잘 살 수 있다면 감수하겠다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결코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았다. 그 선택은 한 시대의 정의를 무너뜨렸고, 그 대가는 공동체 전체가 치러야 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만약 그 선택의 결과가 자신에게서 끝나지 않고 자식과 손주, 그 후대까지 이어지는 책임으로 남는다면 과연 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매국의 대가가 개인의 영달이 아니라 가문 전체가 감당해야 할 도덕적·사회적 책임으로 남는다면, 그 선택은 결코 가볍지 않았을 것이다.
이 질문은 단순한 가정이 아니다. 역사적 책임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다. 물론 이를 이유로 연좌제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죄는 개인의 것이며 책임 역시 개인에게 귀속된다는 원칙은 법치의 기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또 다른 차원의 책임, 즉 역사적·도덕적 책임의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문제는 이 지점에서 우리의 역사가 멈춰 있다는 데 있다. 친일 반민족 행위자들의 책임은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고, 사회적으로도 충분히 공유되지 않았다. 오히려 일부는 해방 이후에도 권력과 기득권을 유지하며 그 영향력을 이어갔다. 정의가 바로 서지 못한 자리에서, 잘못된 선택은 처벌받지 않았고 때로는 보상받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최근 불거진 이완용 후손의 재산 반환 소송은 이러한 역사적 왜곡이 얼마나 현재진행형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조상의 죄가 자손의 죄가 아니라는 원칙은 분명하다. 그러나 나라를 팔고 민족을 배신하는 대가로 축적된 재산을 되찾겠다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행위까지 정당화될 수는 없다. 이는 단순한 법적 권리 행사라는 차원을 넘어, 역사에 대한 최소한의 인식마저 결여된 태도이며 국가와 공동체에 대한 근본적인 존중을 무너뜨리는 행위다.
문제의 본질은 명확하다. 책임이 단절된 역사에서는 잘못된 선택이 부끄러움이 아니라 권리로 포장된다는 점이다. 과거에 대한 분명한 평가와 사회적 합의가 없을 때, 역사적 범죄는 세대를 넘어 다시 정당화되려 한다. 이완용 후손의 소송은 그 극단적인 사례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사 청산은 단순한 처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책임의 연속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누군가의 선택이 공동체에 어떤 상처를 남겼는지 분명히 기록하고, 그 의미를 사회적으로 공유하는 것. 그리고 그 잘못이 결코 영광이나 권리로 이어질 수 없다는 기준을 분명히 세우는 것. 그것이야말로 후대가 같은 선택을 반복하지 않도록 만드는 최소한의 장치다.
우리가 말해야 할 것은 연좌제가 아니다. 기억과 책임이다. 잘못된 선택이 개인의 성공으로 미화되지 않고, 공동체를 배반한 대가는 역사 속에서 분명히 기록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는 일이다. 그것이 후대를 향한 가장 공정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결국 질문은 이것이다. 나의 선택이 나로 끝나는가, 아니면 역사로 남는가. 이 물음에 대한 사회적 기준이 분명해질 때, 우리는 비로소 매국과 같은 비극적 선택이 반복되지 않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책임 없는 역사는 언제든 같은 선택을 부른다. 그리고 그 대가는 언제나 공동체 전체가 치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