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협은 누구를 위한 협동조합인가
    • 배해수 / 무형문화연구원 선임연구원·고고인류학 박사
    • 농촌을 살리는 현실적 대안 가운데 하나는 농협이 본래의 협동조합 기능을 회복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농업협동조합은 오랜 시간 금융 중심의 운영 구조로 기울어지며 조합 본연의 역할이 약화되어 왔다. 자산 확대와 사업 규모의 성장은 어떤 조직에도 중요한 요소이지만, 농협은 그 출발점이 농민의 삶을 지원하는 데 있다는 점에서 일반 금융기관과는 분명히 구별되어야 한다. 지금과 같이 은행 업무 중심의 운영이 지속된다면, 농업협동조합이라는 명칭은 그 정체성을 설명하기 어려운 이름으로 남게 된다.

      기능 변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우체국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거 통신 수단이 제한적이던 시절, 우체국은 전보와 편지, 지역 연락망을 담당하는 핵심 기반이었다. 그러나 디지털 환경으로 전환되면서 그 역할은 급격히 축소되었고, 현재는 금융과 물류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이는 시대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흐름이지만, 공공성을 기반으로 하는 조직이라면 시장 경쟁의 논리만을 따르기보다 존재 목적에 부합하는 기능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점을 함께 보여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농협 역시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특히 소멸 위기에 놓인 농촌에서는 금융 서비스보다 더 절박한 문제가 존재한다. 소량 생산 농산물의 판로 부족, 안정적인 인력 확보의 어려움, 생산과 소비를 연결하는 구조의 취약성이 그것이다. 현재 일부 지역에서 로컬푸드 매장이 운영되고 있으나, 이는 지역 단위의 제한된 실험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전국 단위 조직과 인프라를 갖춘 농협이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유통 구조를 구축한다면, 이는 단순한 판매 채널을 넘어 농촌 경제를 지탱하는 핵심 기반이 될 수 있다.

      또한 농촌 인력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계절노동자 제도가 운영되고 있으나, 시설 재배나 축산 분야에서는 상시 고용이 가능한 인력 체계가 요구된다. 하루 단위의 노동이 아니라 안정적인 월급 형태의 고용을 필요로 하는 현장의 요구는 점점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외국인력 도입과 고용 방식에 있어 보다 탄력적인 정책을 마련해야 하며, 농협은 이를 현장에서 실행하는 중간 플랫폼 역할을 맡아야 한다. 단순한 알선 수준을 넘어, 인력 관리, 숙소 지원, 임금 체계 조정까지 포함한 종합적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여기에 더해 농협은 소규모 생산자를 위한 유통 구조를 별도로 설계해야 한다. 현재의 하나로마트 체계는 일정 규모 이상의 물량을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소량 생산 농가의 참여는 제한적이다. 따라서 지역 단위 소규모 생산물을 수집, 분류, 판매까지 연결하는 전용 플랫폼을 구축하고, 이를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동시에 확장하는 전략이 요구된다. 이는 농민에게는 안정적인 판로를 제공하고, 소비자에게는 신뢰할 수 있는 지역 농산물을 제공하는 구조로 이어질 수 있다.

      농협이 진정한 협동조합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금융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농민의 생산, 유통, 노동 문제를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체계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는 선언적 구호가 아니라 실행 가능한 정책과 제도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예컨대 농협 내에 ‘농촌 인력 지원 센터’와 ‘소량 농산물 유통 플랫폼’을 제도화하고, 정부와 연계된 재정 지원을 통해 초기 운영 기반을 확보하는 방식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지금의 농촌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그 변화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농협이 기존의 방식에 머문다면 농촌의 위기는 더욱 가속될 수밖에 없다. 농협은 더 이상 금융기관으로 평가받는 조직이 아니라, 농민의 삶을 지탱하는 생활 기반 조직으로 자리해야 한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고, 노동과 유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중심축으로 기능할 때 비로소 협동조합의 의미는 현실 속에서 살아난다.

      이제 선택의 시간이다. 농협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구조적 전환을 이루어낼 것인지, 아니면 기존의 틀 안에서 점진적 쇠퇴를 감내할 것인지의 문제이다. 농촌의 지속 가능성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며, 그 해답은 현장에 가장 가까운 조직인 농협의 변화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배해수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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