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가 끝나면 어김없이 반복되는 고질병이 도졌다. 지방선거의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들려온 한 현직 언론인의 자치단체장 인수위원회 대변인 직행 소식은 지역 사회와 언론계에 깊은 허탈감과 서글픔을 안겨주고 있다. 투표함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권력을 감시하던 서슬 퍼런 펜대가 권력의 중심부를 호위하는 ‘입’으로 돌변한 순간이다.
이번 사태가 지닌 파장과 씁쓸함은 단순히 한 개인의 영달이나 이직이라는 사적 영역에 머물지 않는다. 자리를 옮긴 인사가 선거 직전까지 지역 매체의 지방선거 특별취재단장이자 정치행정 보도를 총괄하던 책임자였다는 점 때문이다. 선거 기간 내내 후보자들의 도덕성을 검증하고, 정책의 허실을 따지며, 편집권을 행사하던 수장이 투표 종료와 동시에 당선인의 최측근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를 바라보는 도민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못해 모멸차다. "그동안 그 언론사가 쏟아낸 선거 보도는 과연 공정했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이 터져 나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특정 후보에게 유리한 프레임을 짜거나 의도적인 비틀기가 있지는 않았는지, 언론이라는 공적 자산을 개인의 정계 진출을 위한 발판이나 징검다리로 삼은 것은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이번 직행 사태는 해당 언론사는 물론, 묵묵히 현장을 지키는 지역 언론인 전체의 신뢰도를 한순간에 바닥으로 추락시킨 치명적인 오점이다.
정치권과 당선인 측의 안일한 인식은 사태의 심각성을 더한다. 당선인 측은 "능력 위주의 인사"라며 소통 능력과 업무 이해도를 방패막이로 삼았다. 비판 여론에 대해 "무겁게 받아들인다"면서도 인사를 철회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는 지역 언론을 권력의 동반자나 견제 세력이 아닌, 언제든 필요할 때 데려다 쓸 수 있는 ‘홍보 부속품’쯤으로 여기는 오만한 언론관의 방증이다. 권력자가 언론인을 직행시키는 관행은 언론의 비판 기능을 무력화하고, 자신들을 향한 칼날을 무디게 만들려는 정당하지 못한 정치적 계산과 다름없다.
더욱 우려스러운 대목은 인수위 대변인이 향후 전주시청 공보관이라는 핵심 요직으로 이어지는 ‘엘리트 코스’로 굳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공보관은 시의 막대한 홍보 예산과 언론 집행권을 쥐고 지역 언론계를 상대하는 자리다. 어제까지 동료였던 이가 오늘 권력의 핵심이 되어 예산과 권한을 쥐고 언론을 통제하려 드는 구조는, 지역 언론 생태계를 기형적으로 왜곡하는 주범이다. 제도적 허점을 노려 최소한의 유예기간이나 취업 제한 조치도 없이 권력의 품으로 뛰어드는 이른바 '폴리널리스트(Polinalist)'들의 행태를 막을 법적 장치가 미비하다는 사실이 경종을 울린다.
언론의 생명은 공정성과 독립성, 그리고 독자와의 신뢰다. 이 신뢰가 무너지면 언론은 존재 가치를 잃고 한낱 홍보지로 전락한다. 이번 사태는 결코 개인의 도덕적 일탈로 치부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지역 언론계 전체가 뼈를 깎는 자성에 나서야 할 때다. 내부 윤리강령을 보다 촘촘하고 엄격하게 재정비하여, 선거 보도 관여자의 정계 진출에 대한 엄격한 ‘취업 유예기간’을 명시하는 등 제도적 빗장을 걸어 잠가야 한다.
감시자가 감시 대상과 결탁하는 순간, 민주주의의 보루는 무너진다. 스스로 권력의 품에 안긴 이들에게 저널리즘의 고고한 가치를 묻는 것조차 사치일지 모른다. 그러나 남겨진 자들의 책무는 명확하다. 권력에 취해 펜을 꺾은 이들의 빈자리를 매서운 감시의 눈초리로 채워 넣는 것, 그리고 흔들리는 저널리즘의 기본을 다시 세우는 것이다. 이번 사태가 지역 언론의 부끄러운 과거를 청산하고, 진정한 독립 언론으로 거듭나는 뼈아픈 예방주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