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동혁 대표의 소득 없는 ‘외유성’ 방미와 국민의힘의 자충수,
민주당의 ‘불투명 경선’을 가리는 방패막이인가
정치는 여야가 팽팽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며 치열하게 경쟁할 때 비로소 발전한다. 상대의 실책을 매섭게 질타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야당이 건재해야 여당도 독단과 오만을 경계하게 되는 법이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 정치권의 풍경은 기괴하기 짝이 없다. 6·3 지방선거를 불과 한 달여 앞둔 엄중한 시기, 야당인 국민의힘은 제 역할을 망각한 채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그 무능의 그늘 뒤에 숨어 온갖 불투명한 행태를 이어가고 있다. 여야의 대결 구도가 무너진 자리에 남은 것은 정치 민주주의의 퇴보와 국민의 깊은 한숨뿐이다.
최근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의 8박 10일 미국 출장은 야당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선거가 코앞인 시점에 당 지도부가 나라 밖에서 열흘 가까운 시간을 보낸 것이 과연 적절했느냐는 비판이 당 안팎에서 쏟아지고 있다. 장 대표는 ‘공화당 핵심 인사들과의 핫라인 구축’을 성과로 내세웠지만, 정작 국민이 체감하는 실질적 소득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국내 현안이 산적한 가운데 감행된 이번 출장을 두고 ‘지방선거 포기’ 혹은 ‘외유성 출장’이라는 뭇매가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민심은 차갑게 식어가는데 지도부만 태평하게 태평양을 건너는 모습에서 어떤 국민이 희망을 찾겠는가.
국민의힘의 더 큰 자충수는 과거와의 단절 실패에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혐의 등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된 시점에서도 장 대표와 지도부는 여전히 ‘윤어게인’의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12·3 내란을 두고 “계엄이 곧 내란은 아니다”라며 옹호하거나, 대통령과의 확실한 절연 없이 어정쩡한 스탠스를 유지하는 모습은 중도층의 외면을 부르는 결정적 패착이다. 야당이 국민의 상식과 동떨어진 채 과거의 그림자에 매몰되어 있으니, 여론이 야당에게 호의적일 리 만무하다.
비극은 야당의 무능이 여당의 오만을 정당화해주는 방패막이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벌어지는 경선 과정은 과연 민주적이라 할 수 있는가. 전북 지사 경선 등에서 보여준 기습 제명과 불투명한 컷오프, 원칙 없는 고무줄 잣대는 이미 도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하지만 야당이 정상적인 견제 세력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자충수만 거듭하다 보니, 여당의 이러한 비민주적 행태조차 여론의 전면에서 슬그머니 묻혀가고 있다. 야당이 강했다면, 여당이 감히 이토록 투명하지 못한 경선을 강행할 수 있었겠는가.
결국 야당의 자멸은 여당에게 독이 든 성배를 건네는 꼴이다. 민주당은 야당의 지지율 하락에 안주하며 ‘가만히만 있어도 이긴다’는 오만한 착각에 빠져 있다. 시스템 공천은 무너지고 특정 계파를 위한 줄 세우기가 횡행해도 견제할 세력이 없으니 브레이크 없는 질주가 이어진다. 이는 국민의 입장에서 볼 때 명백한 정치 민주주의의 후퇴다. 여야가 팽팽할 때라야 비로소 정치가 국민의 눈치를 보고, 비리가 드러나며, 정책 경쟁이 일어난다. 한쪽이 무너진 저울은 정치를 타협과 조정이 아닌 ‘일방적 통보’와 ‘꼼수’의 장으로 변질시킨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윤어게인’을 외치는 야당도, 상대의 무능에 기생해 불투명한 경선을 즐기는 여당도 아니다. 야당은 이제라도 과거와 절연하고 민심의 바다로 뛰어들어 정권을 매섭게 견제해야 한다. 여당 역시 야당의 지지율 정체에 안주해 도민의 주권을 무시하는 행태를 멈춰야 한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가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자조 섞인 평가를 받는 것은 국가적 비극이다. 여야가 날 선 경쟁을 벌일 때 정치는 숨을 쉰다. 국민의힘은 소득 없는 외유와 자충수를 멈추고, 민주당은 불투명한 경선 뒤에 숨는 비겁함을 버려야 한다. 전북의 미래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지금 이 기형적인 정치 구도를 향해 준엄한 경고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정치의 퇴보를 막는 마지막 보루는 결국 깨어있는 국민의 시선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