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당 때는 국가 책임, 집권 후엔 지방 책임… 교육을 숫자로만 본 정책의 후퇴
정치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태도는 상황에 따라 얼굴을 바꾸는 ‘조석변개(朝三暮四)’다. 정부가 고교 무상교육 국고 지원을 단계적으로 축소해 끝내 ‘0원’으로 만들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했다. 제도 도입 7년 만에 국가가 교육의 책무에서 손을 떼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재정 이관이 아니다. 교육을 ‘투자’가 아닌 ‘줄여야 할 비용’으로 간주하는 인식의 문제이며, 권력이 약속을 뒤집은 정치의 문제다.
고교 무상교육은 2019년 헌법이 보장한 교육권을 실질화하기 위해 출발했다. 중앙정부는 그동안 47.5%의 재정을 부담하며 제도의 안정성을 떠받쳐 왔다. 그러나 최근 재정 당국은 이 버팀목을 스스로 제거하겠다고 나섰다. 계획대로라면 2028년 이후 시도교육청이 전체 비용의 95% 이상을 떠안게 된다. 학령 인구 감소를 이유로 예산을 줄이겠다는 논리다. 그러나 교육은 단순한 수요 감소로 축소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학생 수가 줄었다면, 그만큼 한 명 한 명에 대한 투자 수준을 높이는 것이 국가의 책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권력의 태도다. 이재명 대통령은 야당 대표 시절 “1조 원도 안 되는 돈 때문에 교육 지원을 줄이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고교 무상교육은 국가 책임이며 미래를 지키는 보루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집권 후 채 1년도 되지 않아 국고 지원 ‘일몰’이 거론되고 있다. 표를 얻을 때는 ‘국가 책임’을 말하고, 예산을 편성할 때는 ‘지방 책임’으로 돌리는 행태는 공정과 상식이라는 국정 기조와도 배치된다.
재정 당국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내국세와 연동돼 교육 재원이 과도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현장의 현실을 외면한 계산이다. 시도교육청 예산의 대부분은 인건비 등 고정비로 묶여 있다. 실제로 활용 가능한 재원은 제한적이다. 여기에 연간 1조 원 규모의 무상교육 비용까지 떠안게 된다면, 교육의 질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사업부터 축소될 수밖에 없다. 노후 시설 개선, 특수교육 지원, 다문화 학생 지원, 기초학력 보장 등 가장 절실한 영역이 먼저 타격을 입게 된다.
결국 문제는 지역 격차로 이어진다. 재정 자립도가 낮은 전북을 비롯한 지방 교육청은 국고 지원이 끊기는 순간 구조적 위기에 직면한다. 수도권과 지방의 교육 환경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다. 이는 교육을 통해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복원하겠다는 국가의 약속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일이다. 교육 불평등을 해소하기는커녕, 국가가 앞장서 격차를 확대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교육은 소모성 지출이 아니다. 국가의 미래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다. 저출산 시대에 아이 한 명은 곧 국가의 미래다. 학령 인구 감소는 예산 축소의 이유가 아니라 교육의 질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기회가 되어야 한다. 교육에 대한 투자를 줄이는 국가는 결국 스스로 미래를 포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고교 무상교육 국고 지원 일몰 계획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재정 논리보다 앞서야 할 것은 국가의 책무다. 교육을 비용의 잣대로 재단하는 순간, 그 피해는 고스란히 다음 세대에 전가된다. 백 년 뒤를 내다보는 국가라면 교육 예산은 ‘한시적 지원’이 아니라 ‘지속적 책임’이어야 한다. 약속을 지키는 것, 그것이 국가의 최소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