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0일 국회가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민주당과 국힘당 원내대표가 합의했는데도 재석 의원 277명 가운데 84명이 반대 또는 기권했다. 정책노선이 아주 다른 진보당과 개혁신당 의원들이 공히 반대표를 던진 것이 눈에 띈다. 누구는 최상목에게 거부권 발동을 요구했고 누구는 그런 행태를 비판했다. 누가 옳은지 살피려면 개정 내용을 보아야 한다. 2007년 이후 18년 만에 이루어진 국민연금법 개정의 요지는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보험료율을 소득의 9퍼센트에서 해마다 0.5퍼센트 포인트씩 올려 2033년까지 13퍼센트로 높인다.
2) 소득대체율을 2026년 43퍼센트로 올린다. 2007년 개정 법률에 따라 40퍼센트까지 점진적으로 인하하는 중인데 올해 41.5퍼센트까지 내려와 있다.
3) 군 복무자에게 가입기간을 추가 인정하는 ‘병역 크레딧’을 강화해 6개월에서 12개월로 늘린다.
4) 자녀를 출산한 가입자에게 추가 인정하는 ‘출산 크레딧’을 강화해 첫째와 둘째 자녀에 대해서는 각각 12개월, 셋째부터는 18개월씩 부여하며 상한을 폐지한다.
5) 저소득 지역가입자에게 12개월 동안 보험료의 절반을 지원한다.
6) 국가의 연금 지급 의무를 법률에 명시했다.
두 당 원내대표의 합의문에 따르면 국회는 국힘당 의원이 위원장을 맡는 연금개혁 특위를 만들어 연말까지 연금재정 안정화와 노후소득 보장을 위한 국민연금 개혁방안을 찾는다. 민주당과 국힘당이 무언가를 두고 협상하고 합의하는 장면을 오랜만에 보았다. 합의 처리한 법률 개정이라고 해서 반드시 국민에게 좋은 것은 아니지만 윤석열의 대통령 취임 이후 완전히 사라졌던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살아난 것 같아서 일단 박수를 쳤다. 그렇지만 이번 개정 내용은 그것대로 냉정하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2023년 2월 6일 에 쓴 칼럼에서 국민연금 개혁에 대한 질문 일곱 가지를 제시하고, 내가 생각하는 답은 적절한 기회가 생기면 말하겠다고 했다. 때가 온 것 같아서 오늘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때 했던 질문을 압축하고 내 판단을 이야기하겠다.
1. 국민연금은 존재할 가치가 있는가?
그렇다. 명백히 존재할 가치가 있다. 2025년 1월 기준 대한민국 인구는 약 5120만 명이다. 65세 넘은 사람을 ‘노인’이라고 하자. 노인은 1000만 명을 넘겨 인구의 20%를 차지한다. 한국은 초고령사회가 되었다. 통계청의 최근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그중 400만 명이 ‘빈곤 노인’이다. 여기서 ‘빈곤’은 상대적 개념이다. 소득이 노인 인구 중위소득의 절반 이하인 사람을 ‘빈곤 노인’이라고 한다. 50년 정도 지나면 대한민국 국민 절반이 노인일 것으로 추정한다. 국민연금은 현재 소득의 일부를 노후자금으로 저축하도록 강제하는 제도다. 목적은 분명하다. ‘고령 빈곤’을 예방하는 것이다. 장수는 축복이지만 소득과 재산이 없으면 재난이 된다. 이런 사회적 위험에 대비하게 하려고 국민연금 제도를 만들었다. 국민연금 제도가 없다고 하자. 1000만 명 넘는 현재의 노인 중에 얼마나 많은 이가 스스로 노후자금을 준비했을까? 인구의 절반을 차지할 50년 후의 노인들은 어떨까? 인간은 완벽하게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다. 미래의 필요를 경시하고 현재의 쾌락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국민연금 제도마저 없다면 고령 빈곤 문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해져 있을 것이다. 국민연금은 존재할 가치가 있다. 이번에 국가의 연금 지급 의무를 법률에 명시한 것은 그 사실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2. 국민연금은 국민 모두의 연금인가?
이론은 그렇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국민연금은 국민 일부만의 연금이다. 국민연금 가입 의무가 있는 경제활동인구는 현재 2320만 명 정도 된다. 그러나 모든 가입 의무자가 가입해 있는 것은 아니다. 국민연금 납부예외자와 연금보험료 장기체납자가 400만 명 정도 된다. 취업하지도 않았고 구직 활동도 하지 않는 비경제활동인구는 아예 가입 의무가 없다. 18세 이상 국민 가운데 약 40퍼센트는 국민연금과 무관하게 산다. 의무가 없는데도 ‘재테크’ 차원에서 국민연금 보험료를 납부하는 ‘임의가입자’가 있긴 하지만 그리 많지는 않다. 이것을 국민연금의 ‘사각지대’라고 한다. 저소득층 보험료 지원을 확대한 것은 사각지대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긴 하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병역 크레딧과 출산 크레딧도 마찬가지다. 이번 법률 개정은 국민연금 사각지대 해소와 사실상 무관하다. 보험료율과 급여수준을 조정하는 ‘재정 안정화 개혁’으로는 사각지대를 해소하지 못한다. 사각지대 문제를 해결하려면 국민연금을 포함한 전체 공적 연금의 ‘구조 개혁’을 해야 한다.
이번 국민연금법 개정은 이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구조개혁을 동반하지 않은 재정 안정화 개혁이기 때문이다. 나는 국민연금을 통한 소득재분배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소득재분배는 국민연금이 아니라 기초연금과 같은 공적 부조를 통해 실현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이런 불합리를 해소하려면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연계하는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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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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