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실과 기자단이 필요한 시기가 있었습니다. 권력의 힘이 막강했던 군사정권 시절입니다. 그때는 기자들이 뭉치지 않으면 권력에 부담되는 사안을 취재하기조차 어려웠습니다. 사자 한 마리에 맞서려고 얼룩말 수십 마리가 스크럼을 짜고 뒷발질해야 하는 동물의 세계와 흡사한 환경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한 언론사의 기자가 홀로 반독재 시위를 하다가 경찰서에 연행돼 온 학생의 신원을 알려달라고 하면, 경찰은 듣는 시늉도 하지 않았습니다. 경찰서 출입기자단이 떼를 지어 서장실로 몰려가 요구해야 마지못해 선심 쓰듯 알려 주곤 했습니다. 기자들은 그렇게 기자실과 기자단의 효능감을 맛봤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확 달라졌습니다. 언론 환경도 크게 변했습니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요 몇 년 새 기자단이 언론자유를 수호하고 언론탄압에 저항하려고 집단행동을 했다는 소리를 들어본 바 없습니다. 오히려 윤석열 정권 때 대통령실이 ‘바이든-날리면’ 보도에 대한 응징으로 기자를 대통령 전용기에 못 타도록 했지만, 대통령 기자실의 ‘1호 기자’들은 항의는커녕 침묵으로 동조했습니다. ‘집단의 힘으로 권력의 횡포에 맞선다’라는 기자실과 기자단의 중요한 존립 논리가 파탄 났다는 걸 이보다 잘 보여주는 사례는 없습니다.
정보통신기술(ICT)의 급격한 발달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활성화로 이미 언론 환경이 급변했습니다. 여기에 인공지능(AI)까지 가세하면서 언론사와 기자의 앞날이 1년 뒤 어떻게 달라질지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기성 언론사와 기자의 독점 체제는 급격하게 무너질 것이고 소통 방식은 더욱 쌍방향·수평화·공유화의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누구나 쉽고 편하게 정보를 발신하는 환경이 더욱 가속화할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당면하고 있는 21세기 언론 환경이라면, 기자단·기자실로 대표 되는 주류 언론의 취재 방식은 ‘20세기의 유물’이라고 할 만합니다. 6·3 대통령 선거를 통해 탄생한 이재명 정권의 이름은 ‘국민 주권 정부’입니다. 시대의 변화와 흐름을 잘 포착한 이름짓기입니다. 이를 언론에 대입하면 ‘소비자 주권 언론’쯤 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 언론은 어디에 서 있습니까. 한국 언론의 모습을 대표하는 ‘기자실-기자단 체제’는 구리기 짝이 없습니다. 세상의 흐름과 거꾸로 달리고 있습니다. 출입처와 편을 먹고 기득권을 지키려고 바둥거리고 있습니다. 소비자는커녕 공급자 시각에서 전혀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새로운 언론환경 아래서 1만 3천여 개의 인터넷 매체가 활동하고 있지만, 이들 대다수 매체가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출입처가 수두룩합니다. 대통령실과 검찰·법원 등 권력기관이 대표적입니다.
검찰을 예로 들어봅시다. 신생 매체가 검찰에 출입하면서 취재하려면 기자단에 먼저 가입해야 합니다. 그런데 검찰 출입 기자들로 구성된 기자단이 매우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고 가입을 사실상 봉쇄하고 있습니다. 기득권 언론으로서도 ‘기자실-기자단 체제’가 밑지는 장사가 아닙니다. 검찰이 선별해 흘려준 독점 정보를 ‘단독’ ‘특종’의 문패를 달아 크게 보도함으로써 클릭 수를 올릴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회사나 개인의 민원 통로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제, 시대 흐름과 맞지 않을뿐더러 언론 소비자의 관점에서 이익보다 폐해가 큰 기자실-기자단 체제를 혁파할 때가 됐습니다. 국민 주권 정부를 자임하는 이재명 정권 초기야말로 바로 그 적기입니다.
그동안 기자실-기자단을 없애려는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닙니다. 노무현 정권 말기인 2007년 5월, ‘취재 선진화 방안’이라는 개혁안이 나왔습니다. 일부 언론사 기자들이 독점해 온 기자실을 모든 기자가 사용하는 브리핑룸으로 바꾸고, 각 부처의 브리핑 내용을 동영상으로 송출하는 ‘전자 브리핑 제도’를 도입하는 게 핵심 내용이었습니다. 정보를 모든 사람에게 투명·공평하게 개방하겠다는 것입니다.
아쉽게 이 방안은, 기득권 언론이 언론자유 탄압, 취재 방해라고 생떼를 쓰면서 실패로 끝났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그때와 크게 다릅니다. 무엇보다 기자실-기자단으로 상징되는 기득권 언론에 대한 개혁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큽니다. 인터넷 시대의 롱테일 상품 판매 방식이 보여주듯이, 수많은 작은 매체를 합치면 소수 기득권 매체를 압도할 정도로 언론 지형이 달라질 것입니다.
기득권 언론의 반발도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약합니다. 이재명 정권의 대통령실이 브리핑 때 대변인뿐 아니라 질문하는 기자도 비출 수 있는 카메라를 설치하겠다고 예고했는데도 언론계의 공식 반발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재명 정권은 다른 사안도 마찬가지지만 언론 분야에서도 점수 따기가 매우 쉽습니다. 언론계를 쑥대밭으로 만든 전임 대통령의 악행을 바로잡기만 해도 박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정도에 만족하면 안 됩니다. 새로운 시대에 맞게 언론개혁을 설계하고 추진해야 합니다. 저는, 노무현 정권 때 시행하려다 실패한 취재 선진화 방안을 대통령실부터 발전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언론개혁의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질문하는 기자를 비추는 카메라 설치 건도 이런 큰 그림 속의 작은 조각이 돼야 더욱 빛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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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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