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사회는 중대한 전환의 갈림길에 서 있다. 정치적 정권 교체를 넘어 시대적 사명을 완수하겠다는 각오로 ‘재조산하(再造山河)’라는 기치를 들었지만, 정작 그 깃발을 실천할 ‘사람’은 어디에 있는지 묻는다. 정권 초기에 내건 구호와는 달리, 인사의 풍경은 감동이 없다. 철학은 보이지 않고, 사람은 실종되었으며, 대개혁의 에너지는 미약하기 짝이 없다.
인사는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다. 그것은 정권의 정신을 투사하는 창이고, 국정의 방향을 구체화하는 얼굴이다. ‘인사가 만사다’라는 말이 단지 인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관용적 표현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운영의 철학이 인사를 통해 드러난다는 깊은 통찰을 담고 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 진실을 좇아가지 못하고 있다.
실제 이재명 정부 인사를 들여다보면, 시대적 전환의 지향점이 잘 보이지 않는다. 관행에 안주한 코드인사, 출신과 라인 중심의 권력 안배,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포장된 구태가 여전히 반복된다. 친윤 색채의 법무부 차관을 임명하고, 민정수석에 검찰 출신이 당연시되는 현실은 법의 이름으로 인간의 삶을 통제해 온 한국 사회의 이면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법치는 필요하다. 그러나 법의 존재 이유는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법기술자보다, 철학자와 인문학자가 공직의 앞자리에 나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정 운영은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를 해석하고 인간의 삶을 재조직하는 가치적 판단이며, 사유의 결과다. 사회 대개혁은 단지 제도만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삶의 방식을 새롭게 정의하고, 존엄의 기준을 재정립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 핵심 주체인 사람이 인사에서 배제된다면, 어떤 개혁도 결국 껍데기에 불과하다.
‘사람 사는 세상’을 외쳤던 과거의 민주정부조차 인사의 함의에 철학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 채 끝내 좌초했던 역사를 우리는 생생히 기억한다.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진정한 방향 수립의 기점에서 ‘사람 중심 철학’을 인사의 본령으로 삼아야 한다. 정권이 실패하는 가장 흔한 원인은 정책의 무능이 아니라 방향의 부재다. 방향 없는 정책은 표류하고, 방향 없는 인사는 혼란을 야기하며, 결국 국정 전반은 표류하게 된다.
그렇다면 방향은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바로 철학에서 시작된다. 철학 없는 정치는 단기적 처방과 인기 영합에 매몰되기 쉽고, 철학 없는 인사는 전시적 인재 등용에 불과하다. 진짜 방향은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미래를 구상하는 사유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것이 곧 인문학과 예술, 문학의 영역이며, 이들이 국가 운영의 전면으로 나와야 하는 이유다.
문학은 시대를 해석하고, 예술은 감수성을 수용하며, 철학은 사회의 영혼을 결정짓는다. 이들은 현실 정치와 다소 거리를 두는 존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정교한 사회 진단자이자, 시대정신을 선취하는 실천가들이다. 이런 이들이 정책 설계의 초기 단계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국가는 또 한 번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를 위한 인간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64년 만의 첫 민간인 출신 국방부장관 탄생의 이유를 생각해 보자. 그것은 바로 군의 폐쇄성과 이념적 편향을 극복하고, 시민적 통제를 실현하기 위함이다. 같은 논리로, 민정, 인권, 교육, 복지, 문화, 인사 등 사회의 핵심 영역은 기술 관료가 아니라 인간 중심의 사고를 가진 인물들이 기획해야 한다.
인간을 이해하는 데 능한 사람들이 정책을 기획하고, 사회 구조를 설계할 때 비로소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나라’가 가능해진다. 그것이 곧 정치의 존재 이유이며, 국가의 의무다. 정권이 정당성을 갖기 위해 필요한 것은 권력의 정당성이 아니라 삶의 정당성이다. 국민이 체감하는 ‘삶의 질의 향상’이야말로 정권의 진짜 업적이다.
지금 우리는 민생이라는 이름 아래 너무 많은 것을 희생하고 있다. 그러나 생존이 절박하다고 해서 철학을 포기할 수는 없다. 급하다고 해서 원칙을 무너뜨릴 수는 없다. 오히려 위기일수록, 전환기일수록 우리는 근본을 돌아봐야 한다. 구조를 바꾸려면 철학을 바꿔야 하고, 철학을 바꾸려면 사람을 바꿔야 한다. 그리고 그 첫걸음이 바로 ‘철학 있는 인사’다.
이제 막 한 달여를 맞은 이재명 정부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단기성과에 눈이 멀지 말고, 체제 유지를 위한 기계적 인사에서 벗어나야 한다. 구조와 시스템의 효율성도 중요하지만, 그 모든 것은 인간 중심의 사유와 감수성이 전제될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사람 중심의 철학이 없는 국정은 무늬만 민주주의일 뿐, 결국 다른 형태의 억압으로 귀결된다.
진짜 대한민국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그것은 사람을 위한 철학, 철학을 구현하는 인사, 인사가 설계한 정책, 정책이 만들어내는 삶에서 시작된다. 사회 대개혁과 재조산하의 진정한 출발점은 사람이며, 사람 중심의 사유다. 공허한 구호가 아니라, 그 철학이 구체적 얼굴을 갖는 순간. 그때 비로소 진짜 변화가 시작된다. 국가는 시스템이 아니다. 국가는 사람이다. 그리고 사람 없는 개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