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청산① 특별고등경찰, 이른바 ‘특고’는 일제강점기 식민 통치의 가장 잔혹한 도구였다. 이들은 독립운동가와 민족 지사, 노동운동가들을 감시하고 체포했으며, 고문과 조작으로 수많은 삶을 파괴했다. 이는 단순한 과거사가 아니다. 인간의 존엄을 짓밟은 국가 폭력이 어떻게 제도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 비극이 해방과 함께 단절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해방 이후 우리는 친일 세력을 단죄하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단죄하지 않은 것이다.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는 행정과 치안 공백을 이유로 친일 경찰들을 다시 기용했고, 그들은 대한민국 경찰 조직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독립운동가를 잡던 손이 해방된 조국에서도 권력을 쥐었다. 이보다 더 노골적인 역사적 역설이 또 있을까. 이는 단순한 현실적 선택이 아니라, 정의를 포기한 정치적 결정이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정면으로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대한민국은 무엇 위에 세워진 국가인가. 정의를 짓밟은 자들을 단죄하지 못한 채 출발한 국가는 과연 도덕적 정당성을 온전히 확보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친일 반민족 행위자들에 대한 처벌 실패는 단순한 과거의 흠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이어지는 구조적 불신의 출발점이며, 법과 정의에 대한 국민적 회의를 낳은 근본 원인이다.
더 불편한 질문도 있다. 우리는 왜 그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못했는가. 그 이유를 ‘현실’이라는 말로 덮어버리기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설명되지 않는다. 결국 권력은 편의와 안정을 선택했고, 그 대가로 정의를 유예했다. 그러나 유예된 정의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왜곡과 불신으로 돌아온다.
우리 사회는 종종 개인의 선택을 이해하려 한다. 일제강점기 일부 조선인들이 생존과 가족을 위해 친일을 선택했다는 논리도 그 연장선에 있다. 그러나 그 선택이 공동체 전체에 어떤 상처를 남겼는지는 충분히 따져 묻지 않는다. 나 하나 살기 위해 나라를 등진 선택이 결국 어떤 사회를 만들었는지, 그 결과가 누구에게 돌아갔는지를 직시하지 않는다면 같은 선택은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
가정을 하나 해보자. 만약 그 선택의 대가가 개인에게서 끝나지 않고 자식과 손주, 그 후대까지 이어진다면 과연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매국의 결과가 개인의 출세가 아니라 가문 전체가 감당해야 할 역사적 책임으로 남는다면, 그 선택은 결코 가볍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연좌제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는 책임의 무게를 지나치게 가볍게 다뤄온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지금까지의 과거사 청산은 솔직히 말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친일인명사전’ 편찬이나 재산 환수 시도는 의미 있는 작업이지만, 그것만으로 정의가 바로 섰다고 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국가 차원의 공식적인 인정과 책임 규명, 그리고 역사적 평가가 명확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한, 이 문제는 끝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미완의 상태로 방치되고 있을 뿐이다.
더 큰 문제는 이 문제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다. 과거를 들추면 분열이 생긴다는 말이 반복된다. 그러나 이는 본질을 뒤집은 주장이다. 과거를 덮었기 때문에 갈등이 지속되는 것이다. 제대로 청산되지 않은 역사는 언제든 정치적 도구로 소비되고, 사회를 갈라놓는 불씨로 남는다. 책임을 묻지 않은 역사는 결코 끝나지 않는다.
국가는 기억 위에 세워진다.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외면하는가에 따라 그 국가의 수준이 결정된다. 친일 청산에 실패한 역사는 대한민국이 오랫동안 정의를 말하면서도 그 정의를 스스로 완결하지 못한 이유다. 과거를 바로 세우지 못한 국가가 현재의 정의를 말하는 것은, 스스로의 기반을 부정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결국 과거사 청산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로서 최소한의 자격에 관한 문제다. 정의를 바로 세우지 못한 국가는 신뢰를 얻을 수 없고, 신뢰 없는 국가는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 과거를 바로 세우는 일은 과거를 향한 집착이 아니라, 미래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이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과연 정의 위에 서 있는가. 이 물음에 당당히 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대한민국은 국가다운 국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