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북, 예산은 있어도 정책은 없다
    • 곽보경 / 작가·前 국회정책연구위원
    • 몇 해 전부터 전북 지역 예술인들을 만나면 비슷한 대목에서 대화가 멈추는 걸 본다. 창작지원금 얘기가 나오면 다들 잠깐 헛웃음을 짓고, "그거 몇 년째 그대로예요"라는 말이 뒤따른다. 

      처음엔 엄살이겠거니 했는데, 몇 번 더 듣다 보니 그 말이 정확한 사실 진술이라는 걸 알게 됐다. 실제로 개인에게 돌아가는 지원금의 상한은 장르를 불문하고 몇백만 원 선에서 오래 머물러 있다. 총사업비가 늘었다는 보도자료는 매년 나오는데, 정작 신청서를 채우는 한 사람의 몫은 그대로다. 예산이 커진다는 소식과 내 손에 쥐어지는 돈이 늘지 않는다는 현실 사이의 간극을, 이곳 예술인들은 매해 다시 확인하는 셈이다.

      숫자를 나란히 놓아보면 그 간극이 더 또렷해진다. 전북의 개인 창작지원 상한은 문학 분야 기준 300만 원이다. 서울의 문학 분야 개인 창작지원은 그보다 세 배 넘게 많은 1,000만 원 수준이라고 한다. 물가와 임대료가 서울보다 낮으니 그만큼 적어도 된다는 식의 설명을 들은 적이 있는데, 창작에 드는 재료비와 시간의 값이 지역이라고 3분의 1로 줄어드는 건 아니다. 오히려 지역에는 지역대로 서울에 없는 부담이 있다. 작업실을 구하기도, 협업할 동료를 찾기도, 발표할 무대를 잡기도 서울보다 쉽지 않은 조건에서, 지원금 액수마저 이렇게 뒤처진다면 이중으로 불리한 셈이다. 게다가 이 상한선은 몇 년째 요지부동이다. 총사업비가 늘었다는 발표 뒤에는 신청 가능한 인원이 늘었다는 뜻이 숨어 있을 뿐, 한 사람이 받는 몫이 늘었다는 뜻은 아니다.

      이 무기력이 가장 아프게 드러나는 곳은 가장 열악한 자리다. 도내 소공연장에서 일하는 청년 인력을 지원하겠다는 사업이 있었는데, 그 지원금을 시급으로 환산하면 최저임금에도 못 미친다는 사실이 의회 심사에서 드러났다. 

      담당 부서의 답은 "예산을 올렸지만 깎였다"는 것뿐이었다. 없는 것보다야 낫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 정도면 이 도가 예술인의, 그리고 청년의 노동을 얼마나 값싸게 여기는지를 숫자로 확인시켜 준 셈이다. 지원한다는 명목 아래 최저임금법의 취지조차 지키지 못하는 사업을 설계해 놓고, 청년 예술인을 위한 정책이라 부르는 건 지원이 아니라 지원의 흉내에 가깝다.

      지역에 남아 창작을 이어가는 이들에게 필요한 건 대단한 액수가 아니다. 최소한 몇 년에 한 번은 상한선이 움직인다는 신호, 그 정도만으로도 버틸 힘이 생긴다. 물가는 오르고 재료비도 오르는데 지원금만 제자리라면, 실질적으로는 지원이 조금씩 줄어드는 셈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전북의 지원금은 발표되는 해가 다르고 총액이 다를 뿐, 정작 개인이 받는 숫자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신규 사업의 이름은 계속 새로 생기는데, 정작 오래된 사업의 지원 수준은 오래도록 그대로인 이 어긋남이야말로 이 지역 예술인들이 매번 마주치는 현실이다.

      전북은 해마다 "문화도시", "문화특별자치도"라는 구호를 내건다. 그 구호 아래서 예산은 분명 늘어나는데, 창작을 지탱하는 핵심 지원금은 멈춰 있고, 그 수준이어야 하는 이유도 앞으로 얼마나 늘리겠다는 계획도 보이지 않는다. 지원금 액수 하나를 올리는 결정이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지, 왜 다른 지역과의 격차를 줄일 계획조차 없는지 도는 답한 적이 없다.

      늘어나는 예산표 뒤에서 정작 예술인의 삶은 바뀌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이 도시가 스스로 내건 구호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보여준다. 새 사업 하나를 더 발표하기 전에, 몇 년째 같은 숫자로 멈춰 있는 그 상한선부터 다시 들여다볼 수는 없을까. 그 숫자야말로 이 도의 문화정책이 실제로 어디에 서 있는지를 가장 정직하게 보여주는 지표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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