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란의 터널을 빠져나와서 – 새 정부의 과제
    • 김관춘 / 논설위원

    • 오늘부터 새 정부가 출범했다. 절차상으로는 정권교체지만, 시민들의 감정과 현실 인식은 단순한 '정치 이벤트'로 보기엔 너무나 복잡하다. 아직까지 내란의 주모자가 거리를 활보하며 투표장을 찾고 그를 비호하거나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이 권력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사실은 이번 정권교체가 단절이 아닌 연속일 수 있다는 불안을 낳는다. 무엇보다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사법적 다툼과 혐오, 갈등이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은, 이 정부가 평상시의 국정운영이 아닌, 민주주의의 근간을 다시 복원해야 하는 과업 앞에 서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급한 불부터 꺼야 한다
      새 정부가 직면한 첫 번째 과제는 바로 ‘신뢰 회복’이다. 윤석열이 저지른 내란 사태는 헌정 질서 유린이자 국가의 기본 질서를 파괴한 중대 사건이었다. 그 후유증은 단지 정치적 혼란으로 끝나지 않고 사회 전반에 걸친 무력감, 분열, 법의 권위 실종 등 복합적인 위기로 확산됐다. 이 때문에 새 정부는 ‘질서 회복’과 ‘공정한 책임 추궁’이라는 상반된 과제를 신속하고 균형 있게 추진해야 한다.
      그 시작은 내란수괴는 물론 중요임무종사자, 단순 가담자들에 대한 각각의 형평에 맞는 엄중한 사법적 단죄와 함께, 법치주의의 회복이다. 이는 정치적 보복이 아니라 정의의 복원이며, 사회 통합을 위한 최소한의 토대다. 동시에 언론, 교육, 문화 영역에서 퍼진 왜곡과 선동, 혐오 담론에 대한 적극적 대응도 필요하다. ‘표현의 자유’는 혐오와 폭력의 변명이 될 수 없다.

      시민과 함께 하는 국정운영
      최근의 정치는 마치 거대한 오락 프로그램처럼 소비되어 왔다. 정치인이 스타처럼 소비되고, 시민은 시청자이자 관객으로 밀려났다. 이 구조를 깰 수 없다면, 선거는 또다시 민주주의의 ‘이벤트화’로 전락할 것이다. 미 일리노이대 커뮤니케이션 학자 네드 오거먼 교수가 지적했듯, 정치가 쇼가 되고 시민이 해피엔딩만을 원하는 수동적 존재가 되는 순간, 우리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잃는다. 새 정부는 국정의 우선순위를 시민과 함께 정하고, 그 과정을 공개하며 숙의하는 방식을 적극적으로 채택해야 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아우르는 공론장 조성, 지역 단위의 자치 권한 확대, 시민의 입법청원권 강화 등이 실질적인 시민참여 민주주의로 가는 길이다.

      거대한 개혁 과제 앞에서
      이번 대선에서도 드러났듯이 사회의 핵심 의제들, 즉 헌법 개정, 차별금지법, 공공재생에너지법, 의료·연금 개혁 등은 거대한 이해관계의 충돌로 인해 정체되어 있다. 의제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것을 풀어낼 정치 의지가 실종된 현실을 시민사회는 강하게 요구하고 있지만, 제도 정치는 여전히 ‘내란의 그림자’에 갇혀 있다. 이럴 때일수록 정치의 기본은 ‘문제를 회피하지 않는 것’이다. 사회적 합의가 어렵더라도 최소한 문제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중단 없는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 연금 개혁은 한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후 위기는 10년 뒤의 일이 아니라 지금 우리 앞에 닥친 삶이다. 당장 손해 보는 집단이 있을지라도, 장기적 관점에서 국민적 신뢰를 쌓는 정치는 언제나 존재해야 한다.

      통합은 ‘침묵의 강요’가 아니다
      국민통합이라는 말은 선거 때마다 등장한다. 하지만 실제 정치에서는 통합이 곧 ‘문제 제기의 중단’이나 ‘다름에 대한 침묵’을 요구하는 형태로 왜곡되기 일쑤였다. 진정한 통합은, 서로 다른 이해와 입장을 공론장에서 마주하게 하고, 그 차이를 조정해 가는 과정이다. 그런 점에서 새 정부는 불편한 목소리를 억누르기보다는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공정한 절차, 설명이 가능한 정책, 반대 의견에 대한 존중—이것이 통합의 출발점이다. 어떤 이슈에서든 최소한 “왜 이 정책이 필요한가”에 대해 시민과 논쟁할 수 있어야 한다.

      희망은 아직 있다
      이 모든 일이 가능할까? 많은 시민들은 지치고 냉소적이며, ‘또 똑같을 것’이라는 비관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누구보다도 정치의 부조리를 꿰뚫고 있고, 변화를 만들어온 시민이다. 내란의 시기에도 광장에서 야광봉을 들고 공동체를 지켜낸 이들이 우리 시민들이다. 문제는 정치가 시민의 기대를 따라오지 못했다는 데 있다. 다행히도 필요한 정책은 이미 제시되어 있고, 그 실행을 요구할 준비가 된 시민들도 있다. 남은 것은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정치의 복원이다.

      선거는 끝났지만 정치의 진짜 시작은 지금이다. 우리가 원하는 변화는 선거 당일의 한 표가 아니라, 그 이후의 지속적인 감시와 참여, 논쟁과 행동에서 비롯된다. 그것이 민주주의이고, 이 혼란의 시대를 극복해 나가는 유일한 길이다. 정치는 더 이상 전문가들만의 폐쇄된 영역일 수 없다. 우리가 정치에 실망할수록, 그 자리는 더욱 위험한 언설과 세력이 채우게 된다. 참여와 감시는 혼란한 시대의 짐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키는 시민의 책임이자 권리다. 선거 이후가 진짜 시작이라는 말은 바로 이 지점에서 진실이 된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은 준비된 시민과 깨어 있는 정치가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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