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일드의 동화 '키다리 아저씨의 정원'에는 담장을 높이 쌓고 아이들을 내쫓은 거인이 등장합니다. 아이들이 사라진 정원에는 긴 겨울만 이어집니다. 꽃은 피지 않고 새들은 노래를 멈춥니다. 그런데 어느 날 다시 아이들이 몰래 들어와 웃고 뛰놀기 시작하자 얼어붙었던 정원은 서서히 달라집니다. 나무에는 꽃이 피고 새들이 날아들며 봄이 돌아옵니다. 외로움과 적막 속에 갇혀 있던 거인의 마음 역시 함께 풀려갑니다.
요즘 농촌의 교육 현실을 바라보면 문득 그 동화가 떠오릅니다. 지금 우리의 농촌에는 마치 겨울에 멈춰버린 정원 같은 학교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생 수보다 교사가 더 많은 학교, 이미 문을 닫은 폐교, 운동장에는 잡초만 무성하고 교실 창문은 굳게 닫힌 공간들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한때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장소들이 이제는 조용한 풍경 속에 멈춰 서 있습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농촌에서 아이들의 모습 자체를 보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십여 년 넘게 시골길을 오가며 초등학교 앞을 자주 지났지만, 가방을 메고 걸어서 등교하는 아이를 거의 본 기억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노란 스쿨버스를 타고 집 앞에서 학교까지 이동합니다. 안전과 편의라는 측면에서는 효율적인 방식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길가의 들꽃과 곤충, 계절마다 달라지는 논밭의 풍경, 친구와 함께 걷고 장난치며 만들어지는 감수성을 경험할 기회를 잃고 있습니다.
교육은 교실 안에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학교로 걸어가는 길 위에서도 아이들은 성장합니다. 이름 모를 풀꽃을 발견하고, 메뚜기를 잡아보며, 비 온 뒤 흙냄새를 맡는 시간은 교과서 밖의 또 다른 교육입니다. 하지만 지금 농촌의 교육은 지나치게 효율 중심으로 움직이며 그런 시간을 점점 밀어내고 있습니다.
폐교 문제 역시 같은 흐름 속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폐교는 사용이 끝난 건물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유년 시절과 공동체의 기억이 남아 있는 공공 공간입니다. 졸업생들에게 학교는 공부만 하던 장소가 아닙니다. 운동회와 소풍, 친구와의 다툼과 화해, 첫 설렘과 첫 실패가 함께 남아 있는 삶의 한 부분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폐교를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재학생만을 위한 교육 공간이 아니라 졸업생과 지역 주민까지 함께 이어주는 공동체 문화공간으로 다시 살려낼 수는 없을까요? 옛 운동회를 다시 열고, 세대가 함께 참여하는 전래놀이와 집단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머무를 수 있는 상설 문화공간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거창한 시설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다시 모이고 관계가 이어지는 일입니다.
농촌의 폐교는 방치된 건물이 될 수도 있지만, 다시 살아나는 마을의 중심이 될 가능성도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돌아오자 얼어붙은 정원에 봄이 찾아왔던 '키다리 아저씨의 정원'처럼 말입니다. 학교는 지식만 전달하는 공간이 아닙니다.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고 공동체를 다시 만나게 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오는 6월 새롭게 선출될 교육감은 이 문제를 단지 행정적 숫자로만 바라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전북이 전국 최초로 폐교 활용의 새로운 모델을 만든다면, 그것은 사라져가는 농촌에 다시 사람의 온기와 웃음소리를 되돌리는 중요한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배해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