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님, 소나무가 죽어가는데 이대로 보고만 계실 겁니까?
    • 최준호 / 전북타임스 대표
    • - 단풍인 줄 알았던 붉은 산, 알고 보니 죽어가는 소나무였다


      지난 주말 경남 통영의 욕지도를 다녀왔다. 남해의 푸른 바다와 크고 작은 섬들이 빚어낸 풍광은 더없이 수려했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해안길과 바다를 품은 산자락은 도심의 번잡함과 일상에서 쌓인 피로를 훌훌 털어버리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 평온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산자락 곳곳에 붉게 물든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벌써 단풍이 들었나?' 싶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단풍이 아니었다. 소나무였다. 푸르러야 할 소나무들이 붉게 말라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었다. 어떤 곳은 집단으로 고사해 산자락이 온통 붉었다. 참으로 처참했다. 아름다운 섬의 풍경 속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현장에서 고사 원인을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전국으로 확산하는 소나무재선충병의 심각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소나무는 단순한 나무가 아니다. 우리 민족의 삶과 정신을 상징해 온 존재다. 사시사철 푸른 기상은 절개와 지조의 표상이었고, 마을 어귀의 노송은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의 삶을 지켜왔다. 그 소나무가 지금 죽어가고 있다. 숲이 사라진다는 것은 산림 생태계의 파괴이자 후손에게 물려줄 소중한 자연유산의 상실이다.

      더욱 분통이 터지는 것은 이 지경이 되도록 국가의 방제정책이 과연 무엇을 했느냐는 점이다.

      지난 15일 오마이뉴스 최병성 기자의 탐사보도는 충격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산림청이 오랫동안 추진해 온 방제정책의 실효성은 물론, 새로운 방제기술의 검증 과정마저 석연치 않다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강원 남이섬에서는 천적 곰팡이를 주입한 이후 소나무와 잣나무의 고사 규모가 크게 줄었다고 한다. 경북 영덕의 한 송이산에서도 소나무 5,000그루에 천적 곰팡이를 주입한 뒤 새롭게 고사한 나무가 20그루에 불과했다는 산주의 증언이 나왔다. 죽어가는 것으로 판단했던 소나무 일부가 회복됐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물론 이러한 사례만으로 천적 곰팡이의 예방과 치료 효과가 완전히 입증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가능성이 확인됐다면 국가가 먼저 나서서 객관적으로 검증해야 마땅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2016년 제주도에서 실시된 천적 곰팡이 효과 검증 실험을 둘러싼 의혹이다. 보도는 실험 현장에 외부인이 제초제를 살포한 정황이 있었고, 실험도 당초 계획보다 일찍 종료됐다고 지적했다. 제초제 살포가 실험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검증 절차는 공정했는지 반드시 밝혀야 한다.

      의혹이 사실이라면 국가기관의 기술 검증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사실이 아니라면 산림청은 관련 자료를 공개하고 과학적 근거로 반박하면 된다.

      2005년 소나무재선충병 방제특별법이 시행된 지 20년이 넘었다. 그동안 막대한 예산과 인력이 투입됐다. 그런데도 전국 곳곳에서 소나무가 붉게 말라 죽어가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기존 농약의 예방효과가 일부 확인됐다는 사실과 국가 전체의 방제정책이 성공했다는 평가는 별개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소나무를 살렸고, 피해 확산을 얼마나 막았느냐다.

      국가가 지켜야 할 것은 기존 방제방식의 권위가 아니라 살아 있는 소나무다.

      산림청이 오랫동안 시행해 온 정책이라 해서 그 방식만 고집해서는 안 된다. 효과가 부족하다면 바꾸고, 새로운 가능성이 있다면 검증해야 한다. 행정의 체면과 조직의 관성이 숲의 생존보다 앞설 수는 없다.

      이제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대통령님, 우리 산하의 소나무들이 이렇게 죽어가는데 언제까지 보고만 계실 겁니까?"

      산림청의 대응만으로 피해 확산을 막기 어렵다면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 재선충병 피해 실태와 방제예산 집행, 기존 정책의 성과를 전면 점검하도록 지시해야 한다. 천적 곰팡이를 비롯한 대체 방제기술도 독립적인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공개 검증을 추진해야 한다.

      효과가 입증된 기술은 신속하게 현장에 적용하고, 효과가 부족한 방식은 과감하게 개선해야 한다. 어느 기관의 주장이 옳으냐를 다투는 동안에도 숲은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소나무 한 그루가 자라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린다. 수백 년을 견딘 노송도 병들어 죽는 것은 순식간이다. 한 번 무너진 숲은 예산을 쏟아붓는다고 하루아침에 되살아나지 않는다.

      지난 주말 욕지도에서 보았던 붉은 소나무들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바다는 눈부시게 푸르렀지만 산은 곳곳에서 죽음의 빛깔을 드러내고 있었다.

      가을 산이 단풍으로 붉게 물드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소나무가 죽어 산이 붉어지는 것은 비극이다.

      "대통령님, 산림청의 보고서보다 먼저 죽어가는 숲을 보십시오. 방제 실적보다 붉게 말라버린 소나무 한 그루를 보십시오"

      지금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대책 발표가 아니다. 실패한 것은 바로잡고, 가능한 대안은 철저히 검증해 실천하는 국가의 결단이다.

      숲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대통령의 결단도 더는 늦어져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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