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정 질서가 또 한 번 위기를 맞고 있다. 오는 4월 18일로 임기가 끝나는 문형배, 이미선 헌법재판관의 후임 인사와 관련,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전례 없이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 2인을 기습 지명하자 정치권과 시민사회 전반에 거센 후폭풍이 불고 있다. 이는 단순한 인사를 넘어, 헌법적 권한의 남용이자 위헌적 행태이며, 나아가 헌정 질서를 근본부터 흔드는 중대 사안이다. 지금 이 시간, 우리는 ‘비상한 시기’의 ‘비정상적 결정’을 마주하고 있으며, 이는 결코 좌시할 수 없는 헌정 질서 유린이자, 민주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무엇보다 문제의 핵심은 한덕수 권한대행이 대통령직을 ‘대행’하는 자격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그는 국민의 직접적인 선택을 받지 않은 고위 공직자에 불과하며, 그 직무는 헌법적으로도 본질적으로 ‘국정의 현상 유지’에 국한된다. 이와 같은 원칙은 단지 관행이나 정치적 도의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 질서의 기초를 이루는 신중한 제도 설계다. 이러한 제약은 대통령의 궐위 상태에서 민주적 정당성을 갖추지 못한 대행 체제가 헌정의 중대한 변화를 초래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였다.
그런데 한덕수 권한대행은 역대 어느 권한대행도 감히 하지 않았던 ‘대통령 고유 권한’인 헌법재판관 지명을 강행했다. 그것도 기습적으로, 어떤 사전적 정치적 합의나 공론화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이는 단지 부적절함을 넘어, 명백한 월권이자 헌정 질서 유린이다. 더구나 지명된 인물 중 한 명인 이완규 법제처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윤 전 대통령의 처가 소송을 대리하고, 검찰독재로 비판받던 국정 운영을 법적으로 뒷받침해온 전력이 있다. 그는 지금 내란 사태와 관련해 수사 대상에 올라 있는 피의자 신분이기도 하다.
이처럼 중대한 결함을 안고 있는데도 한 권한대행은 그 어떤 설명도, 정치적 책임도 지지 않은 채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한 권한대행은 국회에서 추천한 헌법재판관 후보자 3인(정계선, 조한창, 마은혁)에 대해서는 “권한대행은 대통령의 중대한 고유 권한 행사에 대해서는 자제해야 한다”며 임명을 유보한 바 있다. 그런데 불과 몇 달 만에 자신이 했던 말을 손바닥 뒤집듯 번복하고, 더군다나 대통령 몫의 재판관을 직접 임명하는 초유의 자기 모순적 결정을 내린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 권한대행을 맡았던 황교안 대행은 헌법재판관 임명이라는 똑같은 사안에 직면하자 ‘국정의 현상 유지론’을 들며 임명을 보류한 바 있다. 이런 점에 비춰보면 이중 잣대, 견강부회, 그리고 헌법을 정치적 도구로 전락시킨 고무줄 해석이 아닐 수 없다.
과연 그 사이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국민적 합의가 있었는가? 야당과의 협의가 있었는가? 대통령직을 박탈당한 윤석열의 그림자가 여전히 권한대행의 뒤를 짓누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정치권 안팎에서 ‘알박기 인사’라는 비판이 터져 나오는 이유다. 이번 인사는 단순한 임명이 아니라, 향후 윤석열 전 대통령 및 측근들에 대한 헌법재판소 판단의 방향을 좌우할 수 있는 심각한 정치적 ‘지뢰’이다.
헌법재판소는 국가의 최후적 심판 기관이며, 삼권분립의 균형을 유지하는 핵심 축이다. 따라서 헌법재판관의 구성은 그 자체로 정권의 정당성과도 직결되는 사안이다. 그런데 내란 사태의 공범으로 수사선상에 있는 인물에게 헌법 최종 해석권을 부여하겠다는 발상은, 곧 헌법재판소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조롱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를 파괴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완규 지명자는 “헌법 질서가 구현되는 데 일조하고 싶다”며 사퇴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이 얼마나 후안무치한 자기모순적인가. 그는 내란 사태 직후 윤석열 사적 공간에서 열린 ‘4인 회동’에 참석한 인물이자, 휴대전화를 교체하며 증거를 인멸한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형사 피의자다. 그를 임명한 한 권한대행 역시 이 모든 정황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심과 법치, 절차적 정당성, 그리고 국가의 헌법기관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조차 무시하며, 밀어붙이기 인사를 강행한 것이다.
윤석열 파면 이후 잠시 마음을 놓았던 시민들은 또 다시 분노하고 있다.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지명 철회를 촉구하고 있고, 일부 시민단체는 다시 거리로 나서고 있다. 이는 단지 정파적 반대가 아니다. 이는 헌법을 파괴하는 자들에 맞서 지켜야 할 마지막 방어선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제도의 이름으로 스스로 무너질 수 있으며, 역사는 이를 수없이 증명해 왔다. 지금 대한민국이 맞이한 헌정 위기는 단순한 인사 참사를 넘어, 헌정 자체의 붕괴를 우려해야 할 지경이다.
한덕수 권한대행은 지금이라도 사태의 엄중함을 직시하고 위헌적 인사를 즉각 철회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단지 대통령 권한을 대행한 관료가 아니라, 헌정 질서를 파괴한 또 하나의 주범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또한 이완규 지명자 역시 헌법 앞에, 그리고 국민 앞에 무릎 꿇고 사퇴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결코 침묵 속에서 파괴되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그 침묵을 거부해야 할 때다. 그리고 그 시작은 헌법재판소를 지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