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사 연구하지 않은 자, 발언하지 말라(2)
    • 유시민 / 작가

    • 비평도 비평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하다. 평론가는 자신이 한 비평에 대해 ‘지적 책임’을 져야 한다. 나는 평론가로서 다른 평론가들이 내 비평을 정확하고 매섭게 비평해 주기를 원한다. 그러나 내가 말하지 않은 것을 말한 것처럼, 실제로 한 것과 다른 말을 한 것처럼 왜곡 비평하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과 다투기 싫어서 못 본 척하지만 누가 어떻게 내 주장을 왜곡하는지 잘 안다. 내가 했던 민주당 비평의 요지를 다시 말하겠다. 내 비평을 비평하는 정치인과 평론가와 기자들은 읽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비평을 통해 내 견해를 알게 되는 독자들을 위해 분명하게 정리하겠다.

      “조사 연구하지 않은 자는 발언하지 말라.” 마오쩌둥이 한 말이다. 공산당 말을 인용한다고 타박하지 말라. 공산당도 이 정도는 한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인용했다. 누군가를 비판하려면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있는 그대로 알아보는 게 기본이다. 기본조차 하지 않는 기자를 저널리스트라 할 수는 없다. 그런 평론가를 평론가라 할 수도 없다. 그런 정치인을 정치인이라 하기는 싫다. 정신 차리기 바란다. 공산당만도 못해서야 되겠는가.

      요즘 나는 정치인을 만나지 않는다. 민주당이든 조국혁신당이든 정당이 관련되어 있는 행사 초대나 강연 요청은 모두 거절한다. 사람을 상대로 취재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드러난 사실을 근거로 삼아 비평한다. 이른바 조국사태 때는 그렇지 않았다. 사람을 상대로 적극 취재했다. 그런데 전화로 사실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던 어떤 총장과 어떤 교수가 내가 하지 않은 말을 지어내 모함했다. 증거로 사실을 밝힐 수 없는 일이라 다투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일을 겪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취재를 그만두었다. 앞으로도 하지 않을 생각이다.

      나는 소위 ‘친노’다. 노무현 정부의 장관이었고 노무현재단 이사장이었다. 참여정부 인사들을 대부분 안다. 인간적으로 친밀하다. 나는 또 ‘친문’이다. 정치를 그만두었기 때문에 정부에 몸담지는 않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을 존경했고 지금도 존경한다. 문재인 정부 인사들을 두루 안다. 나는 ‘친명’이다. 당원은 아니지만 민주당을 지지하며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이 되면 국정을 잘 이끌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잘 아는 사이는 아니다. 하지만 그가 확고한 민주주의자이고 유능한 행정가이며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을 가졌다고 본다. 누가 이재명의 측근인지는 모른다. 소위 ‘친명’ 정치인·비평가와 교류하지 않는다.

      개인적 친분을 맺으면 객관적으로 비평하기 어렵다. 평론가로서 공사를 구분하려면 사적인 교류를 삼가는 게 바람직하다. ‘친노’든 ‘친문’이든 ‘친명’이든, 나는 정치를 하던 시기에 인연을 맺었던 정치인들과 ‘헤어질 결심’을 했다.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알게 되었고 함께 정치를 했던 사람들 가운데 이미 마음에서 떠나보낸 이가 적지 않다. 지난해 총선에서 떠나보낸 이도 많다. 다가올 대선에서 또 그래야 할 것 같다. 어쩔 수 없다. 그들과의 인간관계보다 글 쓰는 일이 내겐 더 중요하다. 그들 없이는 살 수 있지만 글을 쓰지 않고는 살지 못한다.

      최근 민주당 상황을 보면 일종의 기시감을 느낀다. 2002년이 생각난다. 노무현을 적대하는 언론이 노무현을 공격하는 민주당 정치인을 띄웠다. 그러나 민주당 당원과 시민들은 언론의 공작에 넘어가지 않고 노무현을 선택했다. 2024년 총선도 떠오른다. 언론은 ‘친명횡재 비명횡사’라는 주문을 외면서 이재명을 공격했다. 표본이 오염된 여론조사 결과를 퍼뜨리면서 민주당의 패배를 기정사실로 단정하는 방식으로 민주당을 흔들고 ‘반명’ 정치인들을 비호했다. 그러나 민주당원과 시민들은 그들을 남김없이 정치무대에서 끌어내렸다. 자신이 속한 정당의 대표를 윤석열 검찰독재의 손아귀에 넘겨준 배신행위를 용서하지 않은 것이다.

      거듭 말한다. ‘이재명의 사법리스크’를 내놓고 입에 올리거나 은근히 부각시키는 민주당 정치인은 그들과 같은 운명을 맞을 것이다. 민주당 당원들은 윤석열의 검찰 사유화와 민주주의 파괴행위를 승인하는 정치인을 용납하지 않는다. 법에, 칼에, 계엄령에, 세 번이나 죽을 뻔했던 당의 대표에게 정권교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라고 요구하는 행위를 승인하지 않는다. 당의 주권자가 당원이라는 원칙을 공공연하게 부정하는 정치인을 지도자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내란세력과 민주세력 사이에서 중립을 취하는 방식으로 언론의 조명을 받으려는 정치인한테 국정 운영 권한을 맡기지 않는다.

      민주당의 대표가 이재명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상황이 동일하다면 나는 같은 진단을 내릴 것이다. 내 주장이, 내 전망이, 내 판단이 옳다는 증거는 없다. 나는 그저 내 생각을 말할 따름이다. 나는 말과 글 말고는 가진 무기가 없다. 내 말과 글에 공감하는 사람이 적으면 조용히 사라질 것이다. 최소한 일리는 있는 견해를 말해야 평론가로서 존재할 자격을 얻는다. 나는 내가 아직은, 사람들이 세상을 더 낫게 만드는 일에 대해 생각하도록 북돋우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믿음을 잃으면 ‘정치적 목적’의 글쓰기를 스스로 그만두려고 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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