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컨대 기초연금을 ‘전국민 최소연금’으로 확장하고 국민연금을 완전한 재정 안정성을 갖춘 소득비례연금으로 개편해 기금 고갈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는 것이다. 나는 장기적으로 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며 나아갈 것이라 판단하고 보건복지부에서 일하던 2006년 ‘기초(노령)연금’ 제도를 도입했다. 이런 구조개혁 방안에 대해서는 적절한 기회가 오면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겠다.
6. 적립금이 고갈되어도 연금을 지급할 수 있는가?
이론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에서는 어렵다. 4차 재정계산의 기금고갈 시점이었던 2057년 통계청 인구추계를 보면 총인구는 4219만 명, 노인인구는 전체의 44퍼센트인 1871만 명이다. 노인의 60퍼센트가 국민연금을 받는다면 수급자는 1120만 명 정도 될 것이다. 15세부터 64세까지 인구 2103만 가운데 경제활동인구 비율을 70퍼센트로 추정하자. 실업자가 없고 취업자 전원이 예외 없이 국민연금에 가입한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매월 보험료를 납부하는 국민연금 가입자는 최대 1470만 명 정도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납부예외자나 장기미납자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 시점에는 국민연금 보험료를 납부하는 가입자의 수와 연금 수급자의 수가 비슷할 것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국민연금 기금 적립금이 한 푼도 남지 않았다 해도 소득활동을 하는 가입자의 소득 중에서 연금 지급에 필요한 돈을 보험료로 징수해 연금을 지급할 수는 있다. 국민연금을 ‘적립식’에서 ‘부과식’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럴 경우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은 어떤 수준이 되어야 할까? 외국 사례를 보자. 80년 동안 부과식 연금제도를 운영해온 독일 정부는 최근 소득대체율을 43퍼센트 이상으로 유지하고 보험료율을 소득의 22퍼센트 수준에 묶는 방안을 추진했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다. 2057년 한국은 현재의 독일보다 노인 비율이 훨씬 높다. 22퍼센트 수준의 보험료율로는 43퍼센트의 소득대체율을 충당하지 못한다. 독일과 같은 부과식으로 전환하려면 연령별 인구 편차가 줄어 인구 피라미드가 막대형으로 바뀔 때까지 최소한 30년 이상 기금 적립금 고갈 시점을 늦추어야 한다. 적립금 고갈 시점을 십 년 정도 늦춘 이번 국민연금법 개정은 구조개혁을 하지 않고 제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만큼 재정을 안정화하지 못했다. 그러나 문제를 부분적으로나마 완화해 시간을 벌었다는 것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7. 특수직역연금은 어떻게 할 것인가?
국민연금과 통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무원연금·군인연금·사학연금 등의 특수직역연금 가입자는 모두 합쳐 150만 명이 넘는다. 군인연금은 1973년, 공무원연금은 1993년부터 적자를 내고 있다. 정부는 최근 해마다 두 연금의 적자를 메우는 데 6조 원 넘는 재정을 지출했다. 사학연금도 2033년 첫 적자를 내고 2048년 적립금이 소진될 전망이다. 그때가 되면 정부는 특수직역연금 적자를 메우기 위해 해마다 25조 원 넘게 써야 할 것이다. 특수직역연금의 기본형인 공무원연금 보험료는 과세소득의 18퍼센트(절반은 국가 부담)이고 수익비는 국민연금과 비슷한 1.7이다. 수익률은 조금 낮아도 보험료율이 높아서 혜택은 국민연금에 비할 수 없을 만큼 크다. 공무원연금 수급자 50여 만 명 중에 월 300만 원 이상 연금을 받는 사람이 25퍼센트이고 40퍼센트가 200-300만 원을 받는다. 사학연금과 군인연금의 월 300만 원 이상 수령 비율은 각각 48퍼센트와 34퍼센트나 된다. 적립금이 고갈된 지 수십 년이 지났거나 조만간 고갈될 예정인 특수직역연금을 그대로 둔 채 국민연금 재정 안정화를 도모하는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 최소한 국민연금 수준에 접근하는 재정 안정화 개혁을 해야 한다. 보험료율을 올리기 어려우면 소득대체율을 대폭 내리는 게 합당하다. 국민연금의 근본적인 구조개혁을 실현하는 경우에는 국민연금에 통합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
이번 국민연금법 개정은 2007년과 다른 듯하다. 그때보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조용했다. 국회 본회의 표결에서 반대표와 기권표가 많이 나왔는데도 논쟁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개정 이후에도 몇몇 정치인들이 뒷북을 치며 청년들을 선동하는 정도가 고작이다. 18년 전에는 수백 개의 진보 시민단체들이 ‘국민연금법 개악’을 비난하면서 보건복지부 장관의 퇴진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는데 이번에는 여야 정당 지도부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아마도 끝나지 않는 내란사태 때문일 것이다. 이해한다. 판사와 검사들이 ‘마법의 산수’로 내란 수괴 윤석열을 풀어주었다. 불법 비상계엄과 국회 침탈 장면을 온 국민이 생중계로 목격했는데도 헌법재판관들은 변론을 종결하고 한 달이 지나도록 탄핵 심판 결과를 내놓지 않는다. 나라가 군사정권 시대로 수십 년 퇴행하는 마당에 국민연금 따위야 어찌 되든 뭐가 중요하겠는가. 그래도 한 마디는 해두고 싶다. 국민의 노후 보장을 위한 국민연금 개혁은 윤석열을 파면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과제다. 글이 길어졌다. 독자들이 이번 국민연금법 개정의 의미와 한계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정보를 다 거론하다 보니 그리 되었다. 너그러운 양해를 바란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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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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