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과 7세 고시를 비교하다니? 나가도 너무 나간 것 아닌가, 비약이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싶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보자. 지난 2월 한 TV 프로에서 영유아 사교육 실태 고발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다. 방송에서 확인된 소위 ‘7세 고시’ 실태는 내란진압으로 온 나라가 초긴장 상태라 사회적 관심을 크게 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란만큼이나 충격적인 우리 사회 환부를 드러내 준 것이었다.
정말 내란‘만큼’의 환부라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다음 두 가지 점에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7세 고시 현상은 너무 지독한 반 교육적 폭력이라는 점에서 그렇고, 그 결과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민주주의 토대가 형성되는 것을 가로막게 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왜냐하면 그것은 교육과 돌봄 대신 학대를 허용하는 것이며, 심신 건강한 시민의 성장을 방해해 반민주, 반헌법이 파고들 토양을 만들기 때문이다.
교육부 사교육비 조사에 따르면 사교육 대상 연령은 계속 낮아지고 있다. 지난해 6세 미만 영유아 사교육 참여율은 전체 47.6%다. 이것도 문제지만 주목할 점은 초등입학 직전 5세 사교육 참여율이 81.2%라는 사실이다. 영유아 사교육이 돌봄수요 해결이라는 성격도 있지만, 학교교육 대비 목적으로 확대되고 있음이 확인된다. 소위 인기 영어 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4세, 7세 아이들이 고시에 버금가는 시험을 치른다. A4 한 장을 가득 채운 지문을 읽고 답을 써야 하는 유아들을 상상해 보라.
10세 아이에게 총을 들려주고 군복무를 시키는 것에 동의할 사람이 있을까? 13세 자녀가 결혼하겠다고 나서는 건 어떨까? 아마 누구도 그래도 좋다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니까. 그것을 인위적으로 거스를 때 아이도, 공동체도 모두 불행해진다. 사회가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발달단계에 맞지 않는 교육을 강제하는 것은 교육이 아니라 폭력이다. 부모라도 마찬가지다.
세상에는 군과 경찰 같이 눈에 보이는 제도폭력만 있는 게 아니다. 열 살 아이에게 총을 쥐어주는 것은 반대하면서 네 살, 일곱 살 아이들에게 중·고등학생도 풀기 어려운 영어 지문을 던져주고 문제를 풀라 하는 것, 이것도 폭력이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불안장애, 분노조절 장애, 우울증, 자존감 하락, 학습능력 저하 등을 겪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문가들 지적은 새삼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전쟁 같은 경쟁이 짓누르는 세상 탓이지 내 자식 잘 되라는 부모 탓인가. 억울해 할 수도 있다. 세상을 바꿔야 하지만 그렇다고 세상 탓하며 어린아이들에게 무형의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용인될 수는 없다. 전염성 높은 부모의 불안 바이러스를 지렛대 삼아 수익창출에 혈안이 된 사교육업체의 손을 잡아서는 안 된다. 약자인 어린아이들, 우리 사회 미래를 만들어갈 우리 아이들에게는 최소한 폭력을 행사하지 말자는 사회적 약속이 필요하다.
부모덕에 엘리트 코스 탑승에 성공한 자들이 번지르르한 대학 졸업장과 각종 자격증을 무기삼아 부와 권력은 거머쥐었으나 얼마나 무모한 반지성적 사고에 갇혀 있는지 이번 내란사태를 통해 생생하게 보지 않았나. 성적은 인성에 비례하지 않는다. 화려한 스펙과 지위가 민주시민성을 증명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행복한 삶, 성공한 인생을 담보하지 않는다. 윤석열을 필두로 한 서울대 법대 출신 판사, 검사, 변호사들과 육사 전교 1등 노상원에게는 파면과 형사처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애착형성단계부터 연필쥐기 연습, 영어단어 배우기를 해야 하는 아이들이 자라서 설사 입시와 취업에 성공해도 사고와 성격이 비틀어질 가능성이 높다. 발달단계에 맞게 채워야 할 것들을 채우지 못한 결과다. 반대로 그 트랙에 안정적으로 올라타지 못한 아이들은 낙오자 의식에 시달리며 자존감을 상실하거나 때로는 공격성을 띤 사회불만 세력이 되기도 한다. 그 어느 쪽에도 존중과 공감, 연대가 들어설 자리는 없다.
우리가 123일 동안 내란질환에 시달릴 정도로 힘들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일상을 모두 반납한 채 퇴근 후에도 주말에도 광장을 지켰던 이유는 무엇일까. 내란으로 헌법이 파괴되면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우리의 기본적 권리가 박탈되는 끔찍한 세상을 맞이하기 때문 아니었나. 국민을 지키고 보호해야 할 합법적 폭력인 국가권력의 이름으로 우리의 존엄과 공동체가 파괴되는 걸 막기 위해서 아니었나.
우리가 애써 지키려 했던 헌법정신은 윤석열 파면으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윤석열과 한패가 되어 노골적으로 내란진압을 방해하고, 헌법파괴 진지를 구축하려는 내란잔당세력을 척결해도 충분하지 않다. 검찰개혁, 언론개혁, 사법개혁으로도 충분치 않다. 아니 이 모든 일들이 목적하는 바가 학대받지 않고, 차별받지 않으며, 공감과 연대 속에 각자의 존엄이 지켜지는 삶에 다가가기 위함 아닌가. 진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구현하는 길로 가야 한다. 경쟁이 우리 삶을 집어삼키게 하지 말자. 사랑과 교육의 이름으로 우리 아이들을 학대하지 말라. 정치인과 정당은 아이들 고통에 눈감지 말아야 한다. 7세 고시를 배태시킨 ‘욕망 실현을 위해서는 폭력도 용인된다’는 논리 속에 헌법파괴의 씨가 자람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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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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