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12‧3 내란(쿠데타) 이후 ‘상당한 기간’이 지나 3월 24일 한덕수 국무총리가 복귀했다. 헌법재판소가 그를 ‘구출’해준 셈! 민주당 등 야당이 탄핵 소추한 데 대해 4명의 재판관이 기각을, 2명은 각하를, 1명만 인용했다. 이 결정을 듣고 나는 헌법재판소의 존재 이유를 의심한다. 어떤 면에서 이 모든 게 ‘쇼’ 같다는 느낌도 든다. 그 옛날 같으면, 그날의 ‘끔찍한’ 사건 이후 뒤처리를 ‘민주적으로’ 한답시고 100일이 넘도록 거추장스럽고도 지루한 절차를 거칠 필요 없이 그 ‘나쁜 넘들’을 그저 멍석에 둘둘 말아 몽둥이로 패고 나면 상황이 진작 끝났을 텐데 말이다. 전국 곳곳에서 산불이 나 큰일인데, 내 속에서도 천불이 난다. 가히 조선 말 ‘민란’ 분위기가 들불처럼 퍼질 기세다. 나만 그런 게 아니고 ‘상당한 다수’가 그렇다.
솔직히 말하면 법이니 민주적 절차니 하는 것들은, 그 자체로는 중요할지 모르나 실제 그것이 운용되는 방식을 보면 ‘차라리 없는 편이 낫다’는 생각을 한다. 법률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의 눈에 보기에, 너무나 뻔한 사건도 불필요하게 값비싼 변호사까지 써가며 기득권 내지 자기들 편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는 듯 처리되기 일쑤다. 반면, 누군가 배고파 빵 하나 훔치거나 버스 기사가 동전으로 커피 한 잔 마셨다고 하면 마치 ‘준법’을 철저히 강조하듯 가차 없이 유죄 판결을 내린다. 게다가 ‘변호사 시장’은 왜 그렇게 비싸고도 복잡한가? 차라리 수많은 사람이 모여드는 시장 바닥에서 보통사람들이 갑론을박을 벌여 결판을 내는 게 훨씬 빠르고도 정확할 것이란 느낌!
반면, ‘검찰공화국’에선 법과 양심이 더 빨리 증발해 버린 듯하다. 누가 보아도 뻔한 일들이 상식을 배신한다. 내란 수괴에 대한 탄핵은 지연되고, 불법을 예사로 저지른 감사원과 검사들에 대한 탄핵도 기각됐다. 심지어 힘들게 구속시킨 내란 수괴조차 법원과 검찰의 공모로 ‘탈옥’에 성공했으며, 내란 사태의 여러 비밀을 풀 열쇠 격인 김성훈 경호처 차장에 대한 구속영장도 번번이 기각됐다. 그나마 3월 26일 이재명 대표가 2심에서 무죄 선고된 것은 천만다행이다. 물론, 그 직전에 이 대표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화기애애하게 만난 것 자체가 이미 무죄를 암시한다고 본 이들도 있긴 했다. 이런 일련의 흐름을 보면서 과연 ‘탄핵’ 이후 우리는 어떤 세상을 만들어야 하나, 하는 질문을 또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맨 먼저 나는 민주주의의 근본 토대가 (헌법 19조에 보장된) 양심과 진실이라 믿는다. 그런데 이 양심과 진실은 사회적 관계나 상황, 맥락에 따라 왜곡되기 쉽다. 따라서 이것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언론개혁과 사법개혁을 철저히 이뤄야 한다. 언론개혁을 통해 가짜뉴스나 극우 유튜버가 설치지 못하게 해야 한다. 거짓, 조작, 허위, 폭력, 증오, 혐오 등은 ‘절대로’ 허용해선 안 될 마지노선이다. 사법개혁을 위해선 전관예우나 검언유착을 척결해야 한다. 경찰, 검찰, 판사가 ‘법, 양심, 원칙’을 배신했을 때는 죽을 때까지 유사 직종에 종사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런 식의 언론개혁과 사법개혁을 가장 먼저 해야 비로소 양심과 진실이 살아 숨 쉬는 세상이 된다. 그래야 사회로 인하여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는다. 그리고 선거제도 개혁으로, 다양한 정치적 견해들이 실제 정치에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일례로, 돈과 연줄의 선거가 아니라 철학과 프로그램 중심의 선거를 하면서도 사표(死票)를 방지하려면, 의회 의원들은 완전한 정당비례대표제(정당에만 투표)를, 대통령과 지자체장은 결선 투표제(50% 이상이 나올 때까지)를 도입해야 한다. 이 참에 검찰총장, 법원장, 검사장, 헌재 재판관 등은 판검사 공동체 구성원들이 전체 투표로 뽑으면 좋겠다. 이렇게 언론, 사법, 선거 개혁이 된 바탕 위에서라야 비로소 우리는 사회 개혁을 논할 수 있다.
그 다음 단계로 나는 우리네 일상생활의 민주화를 위해 4가지 개혁을 이뤄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은 교육개혁, 노동개혁, 복지개혁, 농촌개혁이다. 다른 개혁 분야들도 많지만, 이 4대 개혁이 이뤄지면 자연스레 파급효과를 낼 것이다.
교육개혁의 키워드는 ‘개성 있는 평등화’다. 지금처럼 돈과 암기력 테스트로 일류대 가는 ‘값비싼 코미디’는 그만두고 아이들의 개성과 인성을 살리는 교육을 해야 한다. ‘디지털 교과서’도 결국은 (첨단산업의) 새로운 돈벌이에 이용만 당하고 금세 무용지물이 된다. 교육은 돈벌이가 아닌 살림살이의 문제다. 차세대 노동력이 아닌 인격체를 길러야 한다. 물론, 필수 교과목은 있어야 할 텐데, 나는 1) 헌법 2) 근현대사 3) 문학‧철학 4) 자본주의 교육은 초‧중‧고에서 단계별로 차곡차곡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기억력 경쟁이 아닌 비판적 이해가 핵심이다. 그 위에서 아이들의 개성과 꿈을 키우는 교육을 해야 한다. 다양성 교육이다. 일류대 개념도 없애야 한다. 아이들이 재미, 재주, 의미에서 나름의 꿈을 꾸게 도와주고, 그 어떤 꿈을 꾸든 동등하게 존중, 지원해야 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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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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