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대통령 첫 미·일 정상회담, 창의적 ‘실용 외교’ 빛났다(2)
    • 오태규 / 언론인
    • 이런 때 두 나라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은 비슷한 어려움을 공유하고 협력하면서 위기를 타개하는 것입니다. 이 대통령이 일본 방문에서 굳이 과거사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미래 협력을 강조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보수 성향 한반도 전문가 빅터 차는 라는 책에서, 한일 두 나라는 미국으로부터 방기의 위험을 공유할 때 서로 불안을 공유하고 협력을 확대한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또 미국으로부터 방기의 불안을 느끼는 정도가 비대칭적일 경우에 한일의 역사 갈등이 재발한다고 했습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이 대통령이 역사 문제를 밑으로 내려놓은 건 한일 두 나라가 미국으로부터 동시에 거센 압박을 받는 상황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볼 수 있는 거죠.

      이재명 정권이 ‘트럼프 발 격동의 세계’에 대응해 ‘국익 중시 실용 외교’를 꾀하려는 몸부림은 일본의 사례 외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대미 수출 몫이 한국 이상으로 큰 동남아의 강국 베트남의 또 럼 공산당 총서기를 첫 국빈 방문 대상자로 받은 것, 조현 외교부 장관이 일본·미국 순방에 이어 바로 독자 외교의 전범국 인도를 방문한 것, 이 대통령이 일본과 미국을 방문하면서 동시에 중국에 특사단을 파견한 것, 우원식 국회의장이 이 대통령 대신 9월 3일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석하는 것 등입니다. 이런 움직임을 함께 묶어서 보면, 공허한 가치와 진영에 갇혀 허장성세 외교에 허우적대던 윤석열 정권과 확연하게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 정권의 ‘국익 중심 실용 외교’의 초반 성패는 트럼프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이 대통령은 주도면밀한 준비로 트럼프의 럭비공 공세를 피하고 좋은 결과를 냈습니다. 북한 문제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피스 메이커(peace maker)를 하고 나는 페이스 메이커(pace maker)를 하겠다’라는 말은 즉흥적으로 나올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저는 그보다 트럼프 대통령이 위안부 문제와 한일 협력의 중요성을 거론할 때 이 대통령의 대응에 더욱 눈길이 갔습니다. 소인수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위안부 문제 등 아주 민감한 이슈가 있는 것으로 안다.

      과거의 일 때문에 한국과 일본이 잘 지내기가 어려운 것인가”라고 묻자, 이 대통령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트럼프 대통령께서 한미일 협력을 매우 중시하고 계시기 때문에 제가 트럼프 대통령을 뵙기 전에 일본과 미리 만나서 (트럼프) 대통령께서 걱정할 문제를 미리 정리했다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미국보다 일본을 먼저 방문했던 전략이 ‘신의 한 수’였음을 보여준 순간이었습니다.

      그동안 한미일 3국 관계는 미·일이 주도하고 한국이 뒤를 따라가는 것이 상례였습니다. 윤석열 정권 때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의 하위 구성원으로 참가할 것을 약속한 2022년 11월 프놈펜 한미일 공동선언, 중국과 러시아를 공동의 적으로 삼는 한미일 3국의 ‘유사 군사동맹’을 맺은 2023년 8월 캠프데이비드 회담이 대표적입니다. 이번엔 한미일 협력의 방향이 윤 정권 때와 역으로 추진되었습니다. 이번엔 이 대통령 주도로 한·일이 먼저 손을 잡고 미국의 공세에 대응하는 모양새가 됐습니다. 큰 나라가 아니더라도 창의적인 외교로 전략적 공간을 마련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쾌거입니다.

      이런 호평에도 불구하고 이 대통령이 한일 간 핵심 문제인 과거사를 너무 등한시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 동원 관련 시민단체의 비판이 매섭습니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연대는 “실용 외교 속에 역사 정의가 사라졌다”라고 비판했고,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제삼자 변제는 조약도 아니고 한쪽의 일방적 발표일 뿐인데 ‘국가 간 약속’이라며 그 격을 한껏 높여 주기까지 했다”라고 비난했습니다. ‘빛의 혁명’을 통해 탄생한 정권이기에 역사 정의 실현에 앞장서리라고 믿었던 이들의 배신감과 분노는 당연합니다. 저는 이 대통령이 적어도 ‘위안부와 강제노동 문제는 역대 한일 정부가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으로 완전히 해결된 건 아니다’라는 수준의 발언은 명시적으로 했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대통령이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시면 (역사 문제도) 더욱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라고 했으니 지켜볼 일입니다.

      ‘삼국지연의’로 중국제국의 본령을 해석한 김월회 서울대 중문과 교수는 “자원도 인재도 부족한 촉나라가 막강한 부와 인재를 거느린 위나라와 오나라라는 강국의 틈새에서 제국을 건설한 것은 정확한 형세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재명 정권의 ‘국익 중심 실용 외교’의 성공도 정확한 형세 판단과 결단력 있는 행동에 달려 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이재명 정권은 첫 장애물을 잘 넘었다고 안도해선 안 됩니다. 앞으로 더 큰 산과 강들이 놓여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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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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