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대통령 첫 미·일 정상회담, 창의적 ‘실용 외교’ 빛났다(1)
    • 오태규 / 언론인
    •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첫 일본-미국 연쇄 순방(8월 23~24일 일본, 24~26일 미국)에서, ‘국익 중심 실용 외교’의 첫 단추를 잘 끼웠습니다.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특검 수사를 겨냥해 ‘숙청’, ‘혁명’이란 험악한 용어가 담긴 메시지를 발신해 긴장감이 돌기도 했으나, 회담 뒤엔 ‘위대한 지도자’ ‘전폭 지지’라는 찬사로 분위기가 반전됐습니다.

      이 대통령의 최대 난관으로 꼽혔던 한일, 한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난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미국에 앞서 일본을 먼저 방문한 결정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때문에 이 대통령은 일본에서 상상 이상의 큰 환영을 받았습니다. 미국보다 먼저 일본을 방문한 최초의 한국 대통령이니 일본 쪽으로선 당연히 ‘즐거운 놀람(pleasant surprise)’을 느꼈을 겁니다. 더구나 이 대통령은 당선 전부터 일본 주류 사회에서 ‘반일 친북’의 과격한 지도자로 낙인찍혀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 대통령의 파격 행보가 놀라움의 강도를 더욱 높인 이유입니다.

      일본 총리 중에서도 미국 방문 직전에 한국을 먼저 방문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입니다. 1982년 11월 총리가 된 그는, 다음 해 1월 11일 가장 먼저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일본 총리의 첫 공식 방한이기도 했습니다. 박정희 군사 정권 내내 군사 정권을 지지하는 인상을 줄까 봐 공식 방문을 사려왔던 일본 총리가 ‘광주의 피’를 제물 삼아 등장한 전두환 정권 때 ‘이중(二重)의 첫 번째’라는 역사적 의미를 띤 방한을 결행했으니, 많은 한국 사람이 ‘불쾌한 당혹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카소네가 미국 방문(1월 17~20일)에 앞서 한국을 먼저 방문한 건 1982년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 파동으로 경색된 한일 관계를 개선하고, 이를 발판으로 대미 외교력을 강화하며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위상을 높이려는 다층적인 외교 전략의 일환이었습니다. 그는 한국 방문에 이은 미국 방문에서 그 유명한 ‘일본 열도 불침항모’ 발언을 합니다. 전후 맥락으로 봐, 그의 선 한국 방문은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나카소네 총리가 이끄는 소련 대항 연합전선에 전두환 군사 정권을 끌어들이려는 전략적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대통령이 미국 방문 직전에 먼저 일본을 방문하기로 한 의도는 무엇일까요? 저는 간단히 말해, 한일 간 ‘동병상련의 연대’를 꾀하려는 전략적 노림수라고 봅니다. 한일 두 나라 모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내뿜는 경제·안보 양면의 ‘광풍’에 직면해 있습니다. 더욱이 한일은 미국과 동맹이면서 통상 중심 국가이고, 혼자서는 미국에 맞설 힘이 없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런 때 두 나라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은 비슷한 어려움을 공유하고 협력하면서 위기를 타개하는 것입니다. 이 대통령이 일본 방문에서 굳이 과거사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미래 협력을 강조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보수 성향 한반도 전문가 빅터 차는 라는 책에서, 한일 두 나라는 미국으로부터 방기의 위험을 공유할 때 서로 불안을 공유하고 협력을 확대한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또 미국으로부터 방기의 불안을 느끼는 정도가 비대칭적일 경우에 한일의 역사 갈등이 재발한다고 했습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이 대통령이 역사 문제를 밑으로 내려놓은 건 한일 두 나라가 미국으로부터 동시에 거센 압박을 받는 상황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볼 수 있는 거죠.

      이재명 정권이 ‘트럼프 발 격동의 세계’에 대응해 ‘국익 중시 실용 외교’를 꾀하려는 몸부림은 일본의 사례 외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대미 수출 몫이 한국 이상으로 큰 동남아의 강국 베트남의 또 럼 공산당 총서기를 첫 국빈 방문 대상자로 받은 것, 조현 외교부 장관이 일본·미국 순방에 이어 바로 독자 외교의 전범국 인도를 방문한 것, 이 대통령이 일본과 미국을 방문하면서 동시에 중국에 특사단을 파견한 것, 우원식 국회의장이 이 대통령 대신 9월 3일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석하는 것 등입니다. 이런 움직임을 함께 묶어서 보면, 공허한 가치와 진영에 갇혀 허장성세 외교에 허우적대던 윤석열 정권과 확연하게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 정권의 ‘국익 중심 실용 외교’의 초반 성패는 트럼프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이 대통령은 주도면밀한 준비로 트럼프의 럭비공 공세를 피하고 좋은 결과를 냈습니다. 북한 문제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피스 메이커(peace maker)를 하고 나는 페이스 메이커(pace maker)를 하겠다’라는 말은 즉흥적으로 나올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저는 그보다 트럼프 대통령이 위안부 문제와 한일 협력의 중요성을 거론할 때 이 대통령의 대응에 더욱 눈길이 갔습니다. 소인수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위안부 문제 등 아주 민감한 이슈가 있는 것으로 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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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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