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과 같다"라는 말이 무의미한 옛말이 됐다. 교권과 학생 인권의 불균형으로 학교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전북에서 발생한 학부모 악성 민원 문제로 전국의 교육 공동체들이 주목을 하고 있다. 전북 내 교원단체들은 한목소리로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고, 교사들뿐만 아니라 학습권을 침해받고 있는 학생들의 보호도 외치고 있다. 서이초 사건 이후 교사들의 교권 침해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수면 아래 보이지 않던 사안들이 떠오르고 있고, 이에 대한 교육 당국의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
▲교권 침해 피해자, 당신도 될 수 있습니다. 서이초 사건 이후 교원의 교육활동을 보호한다는 내용이 담긴 교권 5법이 시행됐지만 실질적으로 교권을 보호하는 제도 개선이 부족해 교사들은 학부모들의 악성 민원과 교권 침해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정성국 국민의힘 의원이 교육부와 한국교총의 올해 상반기 지역교건보호위원회의 개최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매년 교권침해 관련 심의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 의원에 따르면 학교교권보호위원회에서 심의한 교권 침해는 ▲2020년 1197건 ▲2021년 2269건 ▲2022년 3305건 ▲서이초 사건이 발생한 지난해는 5050건으로 상승하고 있다.
이어 개정된 교원지위법의 시행으로 심의 기능이 학교교권보호위에서 지역교권보호위원회로 이관된 지난 3월부터 상반기인 6월 30일까지 3개월간 교권 침해 심의는 총 1364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북에 발생한 학부모 악성 민원 '전국 주목' 사건은 지난 2021년 처음 시작됐다. 일명 '레드카드' 사건으로 전주 Y초등학교에서 자녀가 수업 시간에 페트병으로 장난을 치면서 수업에 방해가 되자 담임교사는 호랑이 스티커에 해당 학생의 이름을 붙였다는 이유로 학부모 A씨는 4년간 수없이 많은 민원을 제기하고 교사를 아동 학대로 신고하는 등 교육활동을 침해해 서거석 전북특별자치도교육감이 대리고발한 바 있다. 이 사안은 전북에서 교육감이 교권 침해 사안으로 학부모를 대리 고발한 첫 사례다.
지속적인 악성 민원으로 해당 학급 담임교사는 병 휴직을 들어갔지만 이후에도 학부모 A씨는 반복되는 민원 제기와 아동 학대 고소 협박 등으로 5명의 담임교사가 교체됐다.
2022년 학부모 A씨의 자녀가 전주 M초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고, 그다음 해 학부모 B씨의 자녀도 같은 학교로 전학한다.
전학을 간 M초등학교에서 학부모 A씨와 B씨는 학교에 비공개 자료인 생활기록부 누가 기록 및 학교 폭력 전담 기구 회의록, 관리자 복무 사항 등 수십 건의 정보공개 청구를 하고, 생활기록부 교과 평어 수정을 요구하는 등 지속적인 민원을 제기했다.
무분별한 민원으로 M초등학교 교사 7명이 학교를 떠나고, 학교장은 명예퇴직을 했다.
이에 지난 10월 도내 교원단체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해당 학부모들에 대해 교육 당국과 정부의 엄정한 법적 대응을 요구하는 등 힘을 모으고, 전북교육청 교육인권센터에서 현행 교원지위법상 학부모에게 줄 수 있는 최고 수위의 명령인 특별교육 이수 30시간을 조치했지만 학교는 여전히 고통에 멍들어 있다.
▲'교직 탈출은 지능순'…학교 떠나는 교사들 교권 추락과 업무 부담, 민원 증가 등으로 예비 교사인 교대생 중도 탈락률이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학교를 떠나는 교사도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백승아 국회 교육위원회 의원에 따르면 5년간 정년퇴직이 아닌 중도 퇴직 교원은 총 3만3705명이었다. 초등학교 1만4295명, 중학교 1만1586명, 고등학교 7824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9년 6151명 이후 매년 증가한 것으로 2020년 6512명, 2021년 6642명, 2022년 6774명으로 나타났으며, 서이초 사건이 발생한 2023년 7626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세부적으로 구분해 보면 전체 퇴직 교원 3만3705명 중 5년 미만 저연차 교원은 총 1362명으로 4.0%를 차지했다.
이와 함께 15년 이상 25년 미만 고경력 퇴직 교원은 2019년 550명, 2020년 546명, 2021년 631명, 2022년 665명, 2023년 805명으로 코로나 기간에 주춤한 것을 빼고는 지속적으로 크게 증가하고 있다.
백승아 의원실은 중도 퇴직교사가 급증하는 것에 대해 공교육의 이상 신호라고 지적했다.
▲교권 침해, 근본적인 대책과 교육회복 방안은? 교권 5법이 시행됐지만 교권 침해 관련 사건은 증가하고 있다. 이는 교권5법이 교권 침해에 대한 사전 억제적 예방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닌 데다 교권 침해 등과 연관성이 있는 아동 학대 관련 법률 개정 등에 대한 보완책 등이 요구될 것으로 보인다.
외국의 경우 학교생활 매뉴얼이 촘촘하게 구성돼 있어 입학이나 전입 때 학부모와 학생에게 매뉴얼이 전달된다.
예를 들어 미국은 교사보호법에 의해 교사 생활지도에 면책권을 부여하고 있어 교사 폭행 등 교권 침해가 발생하면 민·형사상 책임을 묻고 있고, 캐나다 앨버타주 등에서 시행 중인 타임아웃제는 수업을 방해하거나 다른 학생들 학습권을 침해한 학생을 교실과 분리한다.
교육 당국에서 교권 5법 시행 등과 같이 법과 제도적으로 교육 활동 보호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학교 현장은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는 교사들의 의견이 모인다.
전북교총 오준영 회장은 "단지 법이나 제도만을 가지고 추락해 버린 교권을 다시 회복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며 "지금 필요한 것은 사회적 인식 개선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교사들이 가르침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줘야 가장 질 좋은 수업을 할 수 있다"며 "법과 제도는 바꿀 수 있지만 존중이라는 부분만큼은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야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선 정부 차원에서 교육 3주체가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는 사회 인식 개선 사업이 많이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