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수도권 규제완화’ 망령이 또 고개를 쳐들고 있다. 정부는 지난 1일 ‘리쇼어링’ 대책을 빌미로 수도권 규제 완화가 대거 포함된 ‘2020년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리쇼어링은 정부가 해외에 나가 있는 자국기업들을 각종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 등을 통해 자국으로 불러들이는 정책을 의미한다.
이번 정책의 골격을 보면 정부는 리쇼어링을 최대한 늘려 투자를 확대할 목적으로 국내로 복귀하는 기업에 대해 ‘수도권 공장총량제’ 범위 내에서 부지를 우선 배정키로 했다. ‘중소기업 특별지원 지역’ 적용 범위에도 수도권을 포함시켰다. 이 제도는 비수도권의 산업단지 소재 기업을 대상으로만 시행됐지만 수도권 기업의 경영 애로를 해소한다는 이유로 이같이 결정했다. 비수도권에 한해 지원되던 보조금도 수도권 기업에 지원된다.
첨단 산업 중심의 R&D 센터를 유치하기 위한 전략도 마련했다. 해외에 있는 R&D 센터를 국내로 옮기면 정부가 추진하는 R&D 사업에 가점을 부여하는 등의 방식이다. 수도권의 R&D 인프라가 월등히 탄탄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도권 입주기회를 늘린 셈이다.
유력한 대권주자로 꼽히는 민주당 이낙연 의원 역시 1호 법안으로 수도권 규제 완화 관련 법안 발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된 내용은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할 수 있는 지역 균형발전 사업에 수도권 사업도 포함될 수 있도록 법제화하는 것이다.
여기에 경기?인천 등 수도권 지역 국회의원들까지 가세해 수도권 규제완화와 일자리 창출 방안 등을 담은 ‘수도권정비계획법’ 개정안과 신도시특별법 제정 등에도 나서기로 하는 등 수도권규제완화와 직·간접적으로 연계되는 법안 발의 준비가 한창인 것으로 알려졌다. 총선이 끝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수도권규제완화 관련 법안들이 쏟아져 나올 태세다.
코로나 때문에 나라 전체가 비상인 걸 모르는 게 아니다. 그러나 난국 타개라는 명분이 지방의 일방적인 희생을 전제로 수도권 중심으로만 집중된다면 곤란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연초에 “이런 식으로 수도권에 인구가 편중되다간 지방은 다 고사하겠다는 것이 단순한 비명이 아니다. 사람만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돈 기업 경제력이 집중된다. 이 흐름을 반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했다. 수도권 집중화를 막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수도권 규제 완화라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정부 정책을 종잡을 길이 없다.
지역균형발전은 역대 모든 정부가 주요 국정과제로 추진해온 정책이지만 껍데기뿐인 균형발전이다. 지방 곳곳이 소멸해 가는데 수도권만 번창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폐업, 실직 등 코로나의 충격은 비수도권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정부가 더 잘 알 것이다. 수요를 핑계로 수도권 확대와 지원만 모색한다면 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은 더욱 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