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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체벌 금지’ 법제화…그 이상의 변화가 필요

지난 2017년 12월 전주에서 실종된지 8개월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고준희 양 시체유기’ 사건은 국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다. 친어머니 품을 떠나 내연녀와 살림을 차린 아버지에게 맡겨진 어린 준희양의 삶은 지옥 그 자체였다. 아버지는 6개월 미숙아로 태어났고 갑상샘항진증을 앓고 있던 어린 딸을 상습 폭행했다. 급기야 바닥을 기며 울부짖는 준희양의 발목과 등을 짓밟았다. 키 110㎝에 몸무게가 20㎏에 불과한 준희양은 그렇게 맞고 밟히면서 숨져갔다. 아버지는 죽은 딸을 야산에 암매장했다. 아동학대에 둔감한 한국 사회에 경종을 울린 준희양의 울부짖음이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다.

최근에는 충남 천안에서 9세 아동이 부모의 학대로 여행용 가방에 갇혀 사망한 데 이어 경남 창녕에서 9살 아동이 부모의 학대를 못 견디고 베란다로 탈출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아동학대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또다시 들끓고 있다. 두 아이의 참혹한 사건이 알려진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아동학대 가해자 엄벌과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청원이 잇따르고 있다.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오는 청원 내용은 선진국에서는 당연하게 지켜지는 것들이다. 유엔아동권리협약 등 국제법은 아동이 모든 형태의 학대와 방임, 폭력으로부터 보호받도록 하고 있다. 전 세계 54개국에서 부모의 자녀 체벌을 금지하고 있다.

사회의 지탄을 받는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정부는 개선책을 내놓곤 하지만 언제나 미봉책에 그쳤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아동학대, 특히 자녀에 대한 학대에 대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관대했다. 최근 부모에 의한 아동학대 범죄가 잇따르자 법무부가 ‘부모의 징계권’(민법 915조) 개정에 나섰다. 자녀 체벌 금지를 아예 법에 명문화하겠다는 취지다.

학교나 어린이집 등 교육·보육기관에서 빚어지는 아동학대에 대해서는 그나마 형식적인 예방 매뉴얼이라도 만들어져 있다. 정작 더 심각한 친부모에 의한 아동학대는 ‘남의 집 가정사’로 여전히 사회 관심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왔다. 창녕 아동학대 피해 아이는 3살 때부터 친모에게 학대당했지만,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동학대의 1차적 책임은 당연히 부모에게 있다. 준비 안 된 부모는 아이에게 재앙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부모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아동이 입는 피해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충격이 너무 크다. 자녀를 향한 극단적 체벌뿐 아니라 아동학대 사건이 늘어나는 최근 세태를 보면 우리 사회가 어쩌다 이런 지경에 이르렀나 하는 한탄과 자책, 반성을 지울 길 없다.

친권자의 징계권을 없애는 건 사실상 선언적 의미에 불과하다. 법 조항 하나를 바꾼다고 아동학대가 사라지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는 스스로를 구원할 힘이 없다. 아동학대의 사슬을 끊는 건 법과 제도를 바꿀 수 있는 어른들의 몫이다. 법으로 명문화하는 것 이상의 실질적인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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