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정의당 대표가 같은 당 소속 의원을 상대로 성추행을 저질러 25일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원내 의석을 둔 공당의 대표가 성비위로 사퇴하는 일이 처음인 데다 성폭력 추방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진보 정당이라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정의당은 그간 대외적으로 표명했던 입장만큼 엄격하게 이번 일을 처리해야 할 것이다.
정의당 젠더인권본부장인 배복주 부대표는 이날 ‘다툼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성추행 사건’이 일어났다고 발표했다. 김 전 대표는 지난 15일 저녁 여의도에서 장 의원과 당무 면담을 위한 식사를 마친 뒤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했다. 장 의원은 배 부대표에게 이를 알린 이후 조사가 이뤄졌고, 김 전 대표가 모든 사실을 인정했다. 정의당은 대표단 회의를 열어 중앙당기위원회 제소를 결정하고 당규에 따라 김 전 대표를 직위해제했다.
피해자가 문제를 제기한 이후 가해자가 신속히 행위를 인정한 과정 등이 종전의 유사한 사건들과 다른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평등 이슈를 가장 적극적으로 제기해온 정의당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정의당은 초심을 다잡고 뼈를 깎는 각오로 당 개혁에 나서야 한다.
김 전 대표는 정치에 입문한 뒤 22년 동안 민주노동당 후보로 서울시장에 출마하는 등 진보정치 확장에 매진해온 인물이다. 지난해 10월 그가 당 대표로 당선됐을 때 침체에 빠진 정의당을 쇄신할 것으로 기대한 것도 이런 면모 때문이었다. 그런데 김 전 대표는 이런 기대를 저버린 것은 물론 당을 최악의 위기로 몰아넣었다. 당은 무관용 원칙에 따른 징계를 내리고 재발방지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장 의원은 성명에서 “이 문제로부터 진정 자유로워지고자 한다. 그렇게 정치라는 저의 일상으로 돌아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뜻이 존중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모두 각별히 노력해야 한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 이어 김 대표까지, 여성인권 향상에 가장 민감하다고 여겨졌던 이들의 성비위는 성폭력·성차별의 구조가 공고한 현실을 드러낸다. 피해자인 장혜영 의원은 입장문에서 “현직 국회의원이라는 사실은 결코 제가 피해자가 될 수 없음을 의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막강한 권력을 가진 고위직, 유력 정치인일수록 스스로 경계심을 갖고 성인식을 제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궁극적으로는 법과 제도, 문화, 인식에 뿌리내린 성차별을 해소하는 것이 성폭력 근절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