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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된 대선 주자 정세균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자신의 지지모임인 ‘광화문포럼’에서 기조연설에서 사실상 대선 출마를 선언을 했다.

광화문포럼은 정 전 총리와 가까운 인사들이 참여한 국회의원 등의 조직으로 현역 국회의원이 70여명에 이르는 대규모 조직이다.

연설내용 중에는 대선 출마라는 직접적인 표현이 없었지만, 사실상 대선 출마에 따른 정책기조와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아가할 목표, 국가의 의무 그리고 이같은 대한민국을 이끌 수 있는 자신만의 경험과 삶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었다.

역사상 단 한번도 대통령을 배출하지 못한 전북으로서는 정 전 총리의 대선 출마에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전국 17개 시·도중 가장 가난하고 못사는 전북 경제에 도움을 줬으면 하는 기대가 크다.

때문에 전북의 국회의원은 물론 도민들의 상당수가 그가 대선후보로 선출될 수 있도록 응원하고 후원하는 여러 조직에 참여했고, 향후 더불어민주당이 실시하는 ‘대선후보 경선’에 따른 선거인단 모집에도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가 차기대선 주자를 중심으로 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내에서 조차 상위권이 아니라는 점이다.

하지만 그를 지원하는 분들은 말한다.

정 전 총리만큼 많은 경험을 하고, 그 어느 누구와도 잘 어울리고, 화합하고, 타협하면서 국정을 잘 이끌 후보는 없다고 강조한다.

실제 그는 현재 거론되고 있는 여러 대선 주자 중에서 경험과 성장과정, 대인 관계 측면에서 절대 또는 상대적으로 비교 우위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는 기조연설에서 밝혔듯이 6선 국회의원에, 장관, 당대표, 국회의장과 국무총리까지 경험했다.

이같은 화려한 경력과는 달리 그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의해서 정치권에 들어올 때까지 인고의 시간을 보내는 소위 ‘흙수저’로서 바닥에서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살아왔었다.

그는 유년시절 무려 8킬로미터를 걸어서 초등학교를 다녀야 하는 산골 어린이였다.
 
특히 그는 가난으로 중학교에 진학할 수 없었고, 책가방 대신 지게를 짊어지고, 나무를 하거나 농산물을 날려야 하는 막노동꾼처럼 살아야 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이를 안타깝게 여긴 선생님의 도움으로 고등공민학교와 검정고시를 알게 되었고, 취업이 시급했던 그는 공업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다시 용기를 내어 인문계고로 전학, 학교내 매점에서 아르바이트로 빵을 팔면서 공부, 고려대학교에 입했다. 대학에서도 역시 가난은 계속되었기에 아르바이트를 비롯한 돈벌이와 학업을 같이 했다.

이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늘 미소를 잃지 않았으며, ‘미스터 스마일’이라는 별명도 얻었고, 절도있는 예절 등으로 국회에서 가장 명예로운 상으로 알려진 ‘백봉신사상’을 수차례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시절, 민주당의 당 대표로서 이반된 민심을 되살리고, 무너진 민주당을 재건, 2010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면서 민주당 집권의 길을 준비했다.

그는 이 때 정부 여당의 횡포에 맞서, 단식투쟁을 하는 등 민주주의와 민주당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걸기로 했었다,

그는 또 5~6선에 손쉽게 당선될 수 있었던 전북의 지역구를 포기하고 보수당이 장기간 당선되었던 종로구에서 출마, 5~6선에 잇따라 당선되었으며, 7선이 무난했던 국회의원직을 포기하고 국무총리를 맡아, 국정을 이끌었다.

그는 정치권에 입문하기 전에 쌍용그룹에서 경영인으로 활동했고, 미국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는 등 경제 전문가이기도 했다.

그를 후원하는 분들은 말한다.

코로나로 어려워진 경제를 회생시키고 극심해지고 다양해지고 있는 격차를 줄이고, 국민을 하나로 묶어내면서 나라를 이끌어갈 대선 주자로 정 전 총리보다 더 잘할 사람이 있겠느냐고....

정 전 총리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강조하신 ‘준비된 대선 후보’임에는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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