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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본 5.16과 5.17 그리고 5.18


 
오늘은 1961년 5월 16일 새벽에 2군 부사령관 박정희 소장 주도로 장교 250여 명과 사병 3,500여 명의 쿠데타 세력이 한강을 건너 방송국을 비롯한 서울의 주요 기관을 점령했던 날이다.

이들은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하여 입법권·사법권·행정권의 3권을 통합·장악한다고 선언했고 미국 정부의 신속한 지지 표명과 장면 내각의 총사퇴 및 대통령 윤보선의 군사 정변 인정 등에 힘입어 정변의 합법성을 주장했다.

쿠데타 세력은 군사혁명위원회를 국가재건최고회의로 개칭하고 3년간의 군정통치에 착수했는데 핵심적인 권력기구로써 중앙정보부를 설치하고 이를 근간으로 민주공화당을 조직했다.

그리고 새로 구성될 민간정부를 장악하기 위해 헌법을 개정하여 1963년 10·11월의 양대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제3공화국을 출범시켰던 역사의 시작이 되는 날이다.

이후 박정희의 18년여에 걸친 장기독재가 암살로 막을 내리고 잠깐 서울의 봄을 맞이하는가 싶었으나 내일인 5월 17일에 또 다른 군사쿠데타로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가 정권을 장학하면서 국보위를 내세웠던 어려운 날이 있는 5월의 한복판이다.

어쩌다 5.16으로 시작하여 바로 다음 날인 5.17로 연결이 되었는지 연도의 시차는 차이가 나지만 5월의 날짜는 그렇게 순서가 맞추어져 지금도 역사의 한 부문으로 인식되고 있는지 뒤돌아볼 일이다.

지금에서야 5.16이든 5.17이든 군사 정변이라는 표현의 군사쿠데타라고 하지만 당시에는 정치군인들의 합리화를 위한 말 잔치로 국민은 숨을 죽이고 자기 살길만을 찾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정치군인들이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고 이제는 정말 국토방위만을 위한 참 군인들이 있다는 것이 매우 다행한 현실이다. 이제는 군인들이 정치적인 입지를 가지고 군대를 움직인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미디어의 발달과 국민 의식의 향상으로 이러한 군사쿠데타 등은 더 이상 발을 붙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국민 의식 수준이 높아졌고 군대 역시 고부가가치의 새로운 일자리 창출과 함께 국리민복을 위한 사명감이 높아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차제는 우리 사회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억을 토대로 이처럼 불행한 날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국민적 합의가 묵시적으로 진행 중이다. 돌이켜보면 그때 그 시절의 어두운 정치 현실이 오늘의 우리 사회에 대한 민주주의 깃이 다시 돋아나는 계기가 되었다.

5.16 군사구테타와는 조금은 다르지만 5.17 군사쿠데타는 이후 광주민중항쟁이라는 엄청난 역사의 비극을 양산해 냈던 사건이었다. 지금도 현재 진행형으로 사건조사와 함께 매년 5월이 되면 그때 숨져간 영령들과 부상자들에 대한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 날이기도 하다.

일부 인사들이 지금도 5.18을 망령되게 폄하하면서 여론분열에 앞장서는 인사들이 있는데 이제는 관련 법으로 더 이상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여 사회분열을 초래해서는 안 된다. 여기에 황당한 발언으로 국민을 속이는 인사들에 대해서는 법의 준엄함으로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

이러한 사실에는 여야가 없고 지역색이 없어야 한다. 이번 주에 걸쳐있는 5.16과 5.17 및 5.18을 통해 역사의 진실을 반드시 알고 있어야 우리 사회는 건전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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