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우리나라 보물이 전주시민들의 만남의 장소로 사랑받았었는데 드디어 풍패지관 소위 객사라고 불리는 이 시설물이 3년 만에 시민 품으로 되돌아온다.
전주시는 전주 풍패지관에 대한 그동안 3년간의 서익헌 해체보수와 매장문화재 발굴조사를 마치고 일반에 개방한다고 25일 밝혔다. 실로 오랜만에 고궁이라고 할 수 있는 전주시의 역사적인 건물이 개방되는 것이다.
사실 전주의 보물 아니 대한민국의 보물인 풍패지관은 지난 2016년 정밀안전진단 용역 결과 부속건물인 서익헌의 기둥이 시계방향으로 기울고 목구조가 손상된 것으로 확인돼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동안 기둥 이상 전체 해체보수가 진행됐다.
그러면서 올 상반기 실시된 풍패지관 남측과 서측 부지의 정밀발굴조사 결과 조선 전기에 축조된 월대, 계단시설 등이 확인됐다.
특히 고려시대 대지 조성층에서는 초석건물지의 유구와 그 주변으로 ‘전주객사 병오년조(全州客舍 丙午年造)’ 글자가 찍힌 고려시대 기와편 등이 출토돼 전주객사가 고려시대부터 존재했음이 확인되기도 했다.
고려시대 객사의 존재가 확인된 것은 강원도 강릉 임영관터를 제외하고는 알려진 사례가 드물어 전주 풍패지관의 문화재적 가치와 천년고도 전주의 위상이 재조명됐다. 전주시는 이런 발굴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문화재청과 협의해 향후 보존 및 정비복원계획을 마련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전주라는 도시명이 예전에 순 우리말로 온고을이라고 했다. 한자의 뜻에 따라 전주는 안전하면서 온전한 고을로 자리매김을 해서인지 이렇다할 큰 평지풍파가 없는 고을로도 알려져 있다.
자연재해는 거의 없었고 전란이나 흉년등도 큰 의미없이 지나갔다. 물론 일반적인 어려움의 전란등이 있었지만 다른지역에 비하면 매우 적었다는 뜻이다.
그만큼 전주에 거주하는 백성들 주민들의 안락은 평안을 위주로 하면서 조선시대 왕가의 출발지 였다는 자부심으로 전라도지역을 관할하던 옛스러움의 표상인 풍패지관이 새롭게 복원되어 시민의 품으로 개방되게 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한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대통령이 있었던 청와대까지 개방되었는데 현 정부의 청와대 개방에 따른 장단점을 떠나서 구중궁궐의 찬란함을 직접 국민이 볼수 있었던 것처럼 전주의 상징이었던 풍패지관 즉 객사가 다시 복원된 모양으로 시민들에게 개방된 것은 무척 다행일 수 밖에 없다.
특히 발굴조사과정에서 풍패지관의 건립시기가 고려시대라는 유구가 확인되는 등 값진 성과를 얻게 된 것은 역사적 가치가 있으며 그동안 다른지역에 밀려 우리지역의 소중한 문화유산에 대한 의미가 평가절하 되었던 것을 사실상 재평가 하여 이를 드높힐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전북지역의 자랑스러움이 전주시를 중심으로 역사의 중심에서 전라도 전체를 아울렀던 옛 기상을 생각하며 현대사회에서도 전주가 가지는 위상과 가치가 우리지역의 모든 사물을 아마 전국에서 최고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