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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지은, 애자필보

박황희 고전번역학자 칼럼
한(漢)나라의 개국공신이었던 한신(韓信)에게는 ‘걸식표모’[乞食漂母] 또는 ‘표모반신’[漂母飯信]이라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는 백수 시절에 빨래하는 아낙에게서 밥을 얻어먹은 일이 있었는데, 훗날 초(楚) 왕에 봉해지자 빨래하던 아낙을 찾아 밥 한 끼 얻어먹은 은혜를 천금으로 보답하였다.

위(魏)나라의 도피자 범수(范睢)는 훗날 진(秦)나라 재상이 되어 자신이 유리걸식하던 시절에 눈 한번 흘기며 질시하던 사람에게조차도 반드시 보복하였다.

이른바 “밥 한 그릇의 은혜에도 반드시 보답하였고 눈 한 번 흘긴 원한도 반드시 갚았다.”[一飯之恩必償, 睚眦之怨必報.]라는 고사이다.

범용한 인생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이야기이다. 정상의 자리에서 절대 권력을 갖게 된다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러한 마음을 품어보지 않겠는가? 은혜를 갚고 원수를 징벌하는 권선징악의 주체가 된다는 일은 상상만 해도 얼마나 통쾌한 일인가?

그러나 이것은 결코 미담이 아니다. 선악에 대한 판단의 주체가 내가 되어서도 곤란하지만 그 기준이 자신의 감정의 호오(好惡)에 따른 것이라면 더더욱 불가한 일이다. 내게 잘한 사람이 수상(受賞)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세상에 의로운 자라야 수상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나의 원수가 징벌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응당 세상에 악행을 행한 자가 징벌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대권을 잡아 권력의 주체가 된 대통령 부부가 무소불위의 공권력을 자신의 감정대로 휘두르고 있다.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 그의 부인이 자기 지인을 1호기에 태운다든가, 과거 자신의 사업체와 연관 있던 업체들에게 관저 공사를 맡긴다든가 하는 일들은 인사와 이권의 개입 소지가 다분하며, 외교 문제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는 매우 부정한 선례를 남기는 사안들이다.

전 정부가 시행했던 계승할 만한 치적조차 모두 폄하하여 사업을 중단시킨다거나, 자신의 비위나 감정을 건드렸던 인사들에게 불이익을 주고 좌천시키는 행위들은 모두 사적 감정으로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매우 비도덕적 행위이다.

국민이 우려하는 것은 집권자들의 ‘정책 방향’이나 ‘정치 노선’이 아니다. 집권자들의 ‘민족공동체에 대한 역사의식’과 ‘도덕적 정신세계’를 의심하고 불안해하는 것이다. 드러난 바와 같이 그들의 정신세계는 ‘건진 법사’와 ‘천공 스님’을 비롯한 일군의 영매(靈媒) 매니아들에게 저당 잡혀 있다. 나라의 국운이 영매 조직의 왜곡된 판단과 결정에 의해 망국에 이르렀던 경험을 우린 역사를 통해서 너무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오백 년을 지탱했던 조선왕조가 한순간에 허무하게 무너지게 된 근원에는 ‘민비’와 ‘무녀 진령군’의 악행이 크게 한몫을 했음을 우리는 부인할 수가 없다.

흔히 하는 말로 ‘좋은 게 좋은 것이다.’라고 하는 말은 매우 이기적이며 음모론적일 뿐만 아니라 끼리끼리의 파벌을 조장하고 친소관계로 일을 처리하려는 매우 편향되고 왜곡된 논리이다. 비록 내게 불편하고 매우 성가신 것일지라도 ‘옳은 것이라야 좋은 것’이다. 상벌의 대상이 권력자의 감정의 호오와 친소에 따라 결정된다면, ‘블랙리스트’나 ‘화이트리스트’는 언제든 존재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대학(大學)」에서는 “좋아하면서도 그 사람의 단점을 알고, 미워하면서도 그 사람의 장점을 알아야 한다[惡而知其美하고 好而知其惡]”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한 사회의 어느 곳이든 공동체의 리더가 되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명심해야 할 대목이다. 내게 속한 사물이나 사건을 객관화시키려는 훈련과 세상을 공평하게 바라보려는 노력은 어느 때이든 누구에게나 절실하게 요구되는 덕목이다.

/박황희 고전번역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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