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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행이중 - 遠行以衆

고전번역학자 박황희 칼럼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하였다.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는 자는 그 책의 단지 한 페이지만을 읽을 뿐이다”

인생은 여행이다. ​각계와 각층의 많은 사람을 만나 다양한 교제를 통해 인생의 거울을 삼아야 한다. 어느 길로가야 하는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고독을 피하고자 산행을 떠났으나 내 안에 가득한 욕망의 소리를 듣는다. 언덕에 오르고 나면 뗏목을 버려야 할 것이지만 나는 여전히 무거운 뗏목을 끌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의 욕망이 잉태하였던 ‘괴로움’과 그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소멸’과 ‘소멸에 이르는 길’을 발견하고자 길을 나선 것이었는데, 어디에도 그 길은 존재하지 않았다.

학창시절 학교 ‘짱’이었던 친구와 단둘이 북한산 산행을 하였다. 그는 이제 마음씨 좋은 평범한 동네 아저씨가 되었지만, 폭발적 에너지만큼은 여전하여 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반 팔과 반바지 차림으로 등반을 하였다. 친구 덕에 혼자서는 꿈도 꾸지 못했을 코스를 감행하였다. 대남문을 지나 문수봉, 승가봉, 사모봉, 비봉, 향로봉에 이르기까지 6개의 봉우리를 섭렵하고 나니 초짜 산적은 그야말로 초 죽음의 몰골이 되고 말았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遠行以衆)’는 말처럼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친구와 함께 가라’는 인디안의 속담이 꼭 들어맞았다. 혼자서라면 언감생심 엄두조차 못 낼 일이었다.
산의 정상에 오르고 나니 “일체중생(一切衆生)이 개유불성(皆有佛性)이요, 산천초목(山川草木)이 실개성불(悉皆成佛)이라”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모든 중생에게는 부처의 성품이 있으니 산천초목이 모두 부처와 같다.’라고 하는 말이 참으로 깊은 심중에서 우러 나왔다. 호연한 기상과 더불어 부처와 같은 자비의 마음이 솟구쳤다. 이 맛에 산에 오르는 것이란 말인가?

그러나 정상이 아무리 좋아도 영원히 머물 수는 없다. 다시 내려와야 한다. 영원히 머물 수 있는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비록 세속을 떠날 때는 ‘무심(無心)’ 하였으나 절애의 고봉(孤峰)에서 내 안의 ‘유심(有心)’과 마주하였다. ‘비워 버리리라’, ‘털어 내리라’ 끊임없이 다짐하건만, 다시 세상으로 내려간다면 나는 일체의 유혹과 잡념을 버리고 선가의 도인과 같이 내 안에 ‘유심(唯心)’ 을 품을 수 있으려나 적이 의문스러운 몽상에 한참을 서성거렸다.

하산길에 들린 주막집에서 나는 마치 꺽정이라도 된 듯 게걸스럽게 탁배기 한 사발을 비워냈다.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쳐다보노라니 옛시인의 노랫소리가 가슴에 절절하게 울림으로 다가왔다.

“흰 구름은 학을 따라 춤을 추고,
밝은 달은 사람을 좇으며 돌아가누나.”
白雲隨鶴舞, 明月逐人歸.

/박황희 고전번역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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