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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밑 얼굴없는 천사

전국적으로 매년 이맘때 쯤 되면 기다려지는 소식이 있다. 그동안 전주, 특히 노송동의 얼굴없는 천사의 이야기이다. 이와 함께 비슷한 선행이 전국각지에서 심심치 않게 전해지고 있는데 사실상 그 처음은 전주의 얼굴없는 천사가 아닐까 한다.

이를 다시 한번 일깨워주기라도 하듯 전주시를 사랑과 인정이 넘치는 천사도시로 만든 노송동 ‘얼굴 없는 천사’가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와 세밑 한파를 녹였다.

전주는 해마다 이어진 얼굴 없는 천사의 선행과 그의 행적을 쫓아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천사 시민들이 늘면서 ‘천사도시’로 불려왔다.

지난 27일에 전주 노송동 주민센터에 ‘발신자 표시제한’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중년남성의 목소리로 매년 이맘때면 찾아오는 노송동 얼굴 없는 천사였다. 이 남성은 “성산교회 오르막길에 노란색 다솔어린이집 유치원 차 뒷바퀴에 상자를 뒀습니다. 어려운 분들을 위해 써주세요”라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이 전화를 받고 노송동 주민센터 직원들이 중년 남자와 통화 내용을 따라 현장으로 나가 확인해보니 A4용지 박스가 놓여 있었고 상자에는 5만 원권 지폐 다발과 동전이 들어있는 돼지저금통 1개가 들어 있었다. 금액은 모두 7,600만원이 조금 넘는 금액이었다.

지금까지 이름과 직업도 알 수 없는 얼굴 없는 천사가 올해로 23년째 총 24차례에 걸쳐 몰래 보내 준 성금은 총 8억8,473만3,690원에 달한다.

여기에 천사가 남긴 편지에는 “대학 등록금이 없어 꿈을 접어야 하는 전주 학생들과 소년소녀가장에게 작은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힘내시고 이루고자 하는 모든 일들이 이뤄졌으면 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적혀있었다.

이 성금은 사랑의 공동모금회를 통해 얼굴 없는 천사의 뜻에 따라 지역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과 소년소녀가장 등 소외계층을 위해 사용될 것이다.

사실 전주의 ‘노송동 얼굴 없는 천사’는 지난 2000년 초등학생을 통해 58만4,000원이 든 돼지저금통을 중노2동 주민센터에 보낸 뒤 해마다 성탄절을 전후로 남몰래 선행을 이어오고 있다.

이에 따라 전국의 국민들이 감동을 받아 해마다 이어지는 얼굴 없는 천사의 선행이 알려짐에 따라 전국에 익명의 기부자들이 늘어나게 하는 ‘얼굴 없는 천사’들이 나타나게 했다.

전주시는 이와 관련해서 얼굴 없는 천사의 뜻을 기리고 그의 선행을 본받자는 의미에서 숫자 천사(1004)를 연상케 하는 10월 4일을 ‘천사의 날’로 지정하면서 주변 6개동이 함께 천사축제를 개최해 불우이웃을 돕는 등 나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2010년에 얼굴 없는 천사의 숨은 뜻을 기리고 아름다운 기부문화가 널리 확산될 수 있도록 노송동 주민센터 화단에 ‘당신은 어둠 속의 촛불처럼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만드는 참사람입니다. 사랑합니다’라는 글귀가 새겨진 ‘얼굴 없는 천사의 비’를 세우기도 했다.
아직 사람의 인정이 훈훈한 사회다. 어렵고 힘든시기에 다시한번 마음을 담을 수 있는 이런 소식이 항상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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