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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그것을 행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면, 비록 산을 옮기고 바다를 막는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마침내 성공의 날이 있을 것이다”
吾心信其可行, 雖移山塡海之難, 終有成功之日.
“내 마음이 그것을 행할 수 없을 것이라 믿는다면, 손바닥을 뒤집고 나뭇가지를 꺾는 것처럼 쉬울지라도 성공을 기약할 수 없다”
吾心信其不可行, 則反掌折枝之易, 亦無收效之期也.
중국 근현대의 역사를 새로 쓴 위대한 혁명가, 손문(孫文)이 자신의 저서 「건국방략(建国方略)」에서 한 말이다.
굳이 그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사람은 누구나 성공을 기약할 수 있다. 자신에 대한 믿음만 있다면 꿈꾸기에 늦은 나이란 있을 수 없다. 사과나무와 떡갈나무는 자라는 속도가 서로 다를 뿐이다. 모든 꽃이 다 봄에 피는 것은 아니다. 가을에 피는 꽃도 있고 겨울에 피는 꽃도 있다. 비록 늦게 피는 꽃이 있을지언정 피지 않는 꽃은 없다.
인생을 살다 보면 빠른 거북이도 있고 느린 토끼도 있는 법이다. 세상 어디에나 형태의 ‘다름’과 능력의 ‘차이’는 존재한다. 너무 조급하거나 초조해야 할 필요는 없다.
계란이 많이 모인다고 닭이 되는 것이 아니며, 닭이 많이 모인다고 봉황이 되는 것도 아니다. 마지못해 피는 꽃이 없듯 억지로 살아가는 인생도 없어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관조의 대상’이 아니라 ‘실천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풀어야 할 숙제’ 가 아니라 ‘경험해야 할 신비’이기 때문이다.
‘변화’라고 할 때의 ‘變’은 형태의 變形을 의미한다. 쌀이 밥이 되는 외향적이고 현상적인 ‘외면의 변형’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化’는 형질의 變異를 의미한다. 밥이 술로 바뀌는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내면의 변이’를 말하는 것이다.
자아가 죽었다는 것은 그저 ‘변했다’라고 하는 외형적 현상의 차원인 ‘personality’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본질 자체가 ‘변화’되는 내면적 형질의 차원인 ‘value’의 세계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로 태어나려는 자는 언제나 자아의 세계인 알을 깨고 나와야만 하듯 개혁은 외형적 현상이 ‘변해서’ 될 일이 아니라 내면적 본질까지 온전히 ‘變異’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인생이 비록 자신의 노력으로 살아온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살아갈 미래는 자신의 힘으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법이다.
중국 속담에 ‘늙어 죽을 때까지 배움은 끝나지 않는다[活到老 學到老]’라는 말이 있다. 주은래(周恩來)가 사용하면서 더욱 유명해진 말이다.
배움은 멈추지 말아야 한다. 일생을 통해 배운다 해도 우리는 여전히 초보자일 뿐이다. 인생이 아무리 많이 배운다고 할지라도 세상에는 항상 발견해야 하는 새로운 세계가 있는 법이다. ‘無知’가 결코 죄는 아니다. 그러나 무지는 때로 타인을 해치는 흉기가 될 수 있다. 무지하면서 겸손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인생이 무지하면 ‘대략 난감’이 되기도 하지만 대개는 ‘대략 용감’으로 전략적 진화를 거듭한다. 결단의 순간 무지가 신념을 갖게 되면, 그땐 반드시 공동체의 재앙이 되고 만다.
사람의 본성은 진화하지 않는다. 역사와 문명은 진보하지만, 인간의 본성은 결단코 진화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고전(古典)’은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구방심(求放心)’의 방편이다. 학문이란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 존재인가를 깨달아 가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그러므로 배우는 자의 기도는 항상 겸손해야 한다.
나는 학문을 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역사’와 ‘자신’을 객관화해서 볼 줄 아는 능력을 키우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이 말의 의미를 담아내고자 몇 가지 형태의 고문으로 한역을 해 보았지만 딱 떨어지는 문장을 얻기가 쉽지 않았다. 평서문과 강조형, 조건절 등 여러 구문 가운데 의미가 대략 통한다고 느껴지는 문장으로 나를 경계하는 격언으로 삼았다.
# 정사입신 유유학문 -正史立身 唯有學問
역사를 바로 알고 자신을 바르게 세우는 힘은 오직 ‘학문’에 있다.
# 불학즉무이정사입신 -不學則無以正史立身
배우지 않으면 역사를 바로 알고 자신을 바르게 세울 수 없다.
# 학이정사 수이입신 -學以正史 修以立身
‘學問’을 하여 역사를 바로 알고, ‘道’를 수양하여 자신을 바르게 한다.
# Studying is to develop the ability to objectively view oneself and 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