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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7과 5.18

우리 현대사에서 비극적인 사회상이라고 하면 단연코 광주민주화운동을 꼽을 수 있다. 1980년에 일어난 행위이니 지금으로부터 40년을 훌쩍 넘겼다.

당시의 사회 혼란에 대한 수습을 위해 광주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을 신군부들은 이들을 폭도로 몰아 소위 광주사태라고 했다.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치면서 한 서린 인생을 살아왔던 분들이 계시건만 아직도 이런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들은 전혀 사과하거나 회개할 마음이 없는 것 같다. 정권이 바뀌고 민주화 세력의 대통령이 집권했지만, 광주에서 일어난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서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5월 17일과 5월 18일일 양일에 걸쳐 당시 신군부 세력들의 명분 쌓기에 광주를 제물로 삼아 현대화 6.25 전쟁의 동족상잔 이후 4.19 혁명 때 발포한 경찰들을 넘어 국가와 민족 그리고 국민을 지키는 군인들이 총과 무기를 동원하여 국민을 억압했던 사건이다.

이후 발포명령자를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심증만 갈 뿐 아직도 밝히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광주에서의 비극에 관한 책임자들은 어느 정도 밝혀졌고 그들에게 사과를 요구했지만, 전혀 응하지 않고 불귀의 객이 되었다.

또한 당시 상황에 참여한 다수의 정치군인이 지금도 연로하지만 살아있고 광주에 투입되어 살상을 저지른 군인들이 있지만 이들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따라서 진상을 밝히는 것은 여전히 미완으로 남아 안타까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광주의 오월의 슬픔과 분노에 휩싸이며 먼저 간 영령들을 추모하면서 그들의 행함이 절대 헛되지 않았음을 알게 한다. 이것은 한반도 남쪽의 전라도 광주라는 어느 한쪽만의 일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일이 되고 있다.

독재정권에 저항하고 정통성이 없는 정권에 맞서는 것은 민주주의라는 고유의 영역이다. 천부인권이 주어지고 주권재민이라는 말이 있듯이 언제나 우리 사회의 주인은 구성원인 국민이고 잠깐의 권력을 쥔 그들이 영원하게 이어갈 줄 알았던 단견의 생각이었다.

우리 사회의 국민은 예전부터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불의에 맞서고 신분사회의 불공평에 저항하면서 역사적으로 봉건주의를 뛰어넘기 위해 많은 백성이 분연히 일어나지 않았던가?

다시 한번 5월의 함성을 돌이켜보면서 그때 그 시절 저항의 역사를 몸에 두른 분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분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민주주의라는 역사적 찬란함이 이르게 되었고 사회발전의 기폭제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정신 못 차린 일부 인사가 있다. 지금도 그들은 광주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개입되었다는 망발을 하면서 국민 대화합을 헤치고 있다. 그렇게 해야만 자신들의 작은 권력이 유지되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광주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옳지 못한 주장을 남발하는 이들을 좌시해서는 안 된다. 법으로 이들의 주장이 잘못되었다면 처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먼저 간 영령들에 대한 사죄의 길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오월의 먼저 간 영령들에게 숭고한 추모의 정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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