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이다. 현대사의 가장 굴곡된 오늘이 하필이면 바로 이틀 전 5.16일과 비교되기도 한다. 5·18의 광주 정신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항상 광주 정신을 보듬고 살아가야 하는 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틀 전의 5.16은 있어서는 안 되는 날이었으면 현대사의 암울한 역사를 보여주는 군사정부의 독재정권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했다. 결국 10.26으로 무너지기는 했지만, 연장선상으로 신군부 세력들이 집권하면서 일으킨 5·18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기도 했다.
사실 광주는 일제강점기부터 학생운동으로 저항의 산실이 되기도 한 지역이다. 남도 특유라는 말이 생성될 정도의 저항 기질이 일제강점기에도 유감없이 나타났었으며 현대사에서도 5·18로 대변되는 민주화운동의 큰 물줄기를 나타내기도 했다.
하지만 4·19와 함께 전쟁이 아닌 국민을 지켜야 하는 경찰이나 군인들이 총부리를 국민을 향해 겨누었고 발사했다는 것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었다. 4·19에서는 당시 발포를 명령했었다고 하는 최인기 내무부 장관과 곽영주 경무대경찰서장이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하지만 5·18에서는 그렇게 많은 인명을 살상하고서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사망했고 아직도 그들의 측근 언저리에 머물고 있던 자들은 아직도 살아서 권력의 향유를 맛보며 노후를 즐기고 있다.
4·19 혁명 시기와 비슷했으면 벌써 5·18 발포책임자를 규명하고 사형을 선고하고 집행했어야 하지만 먼저 간 영령들의 곡소리만 묻혀버린 한 맺힌 역사적 산물이 되고 말았다. 5·18은 매년 돌아오지만 그렇게 잊히는가 보다.
돌이켜보면 한반도에서의 근현대사는 매우 굴곡된 역사의 현실이었다. 구한말의 임오군란에서부터 갑신정변 그리고 동학농민혁명을 비롯하여 외세의 침탈을 막고자 의병들이 나섰던 역사의 사실들이 있다.
현대사 역시 광복 이후 남북의 좌우 이념에 따른 대립으로 북한의 남침으로 3년여에 걸친 6·25 동란이 있었고 이승만의 평생 집권을 위해 정치적인 조작으로 주요 인사들의 납치와 감금 등 끊이질 않은 대립과 갈등이 있었다.
결국은 민중혁명에 의해 무너졌고 잠깐 문민정부가 들어섰다가 5.16으로 다시 무너지고 서울의 봄이라고 할 수 있는 그때 그 시절에는 5·18로 득세한 정치군인들의 세상이 한반도 남쪽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신군부의 세력들이 정치 세력화하여 보수색채를 띠게 했고 여기에 저항했던 정치 세력들이 이제 진보라는 이분법적 편 가름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5·18 역시 여기에 조금도 다르지 않을 것이며 가해자들은 오늘날 보수라는 생각으로 그리고 피해자들은 진보라는 생각으로 나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모두가 이렇게 생각하고는 있지 않겠지만 대략적인 판단이 오늘의 5·18을 보내고 있다.
다시 5·18을 생각하면서 보수이든 진보이든 민족의 비극임을 알고 이날 민주주의를 위해 쓰러져간 영령들을 추모하는 것에는 더 이상 보수와 진보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민족화합과 대통합의 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