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상황의 차이에 주목한 드 발은 알파 메일의 보안관 역할이 호의라기보다는 의무에 가깝다는 결론을 내렸다. 암놈과 새끼 침팬지를 비롯한 약자를 지켜주지 않은 알파 메일은 도전자와 권력투쟁을 할 때 무리의 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드 발은 최신작 ‘차이에 관한 생각’ 제9장에서 미국 에모리 대학교의 여키스 영장류 연구소에서 관찰한 알파 메일 침팬지 아모스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모스는 간과 여러 장기에 악성 종양이 생겼는데도 더 버틸 수 없게 된 시점까지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행동하면서 알파 자리를 지켰다. 아모스가 쓰러지자 다른 침팬지가 권좌에 올랐다. 그런데 다른 침팬지들이 앓아누운 아모스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와 보살펴 주었다. 아모스가 죽자 무리의 침팬지들은 며칠 동안 기괴할 정도로 조용했다. 밥을 잘 먹지 않았다.
아모스는 평생 침팬지를 관찰한 드 발이 본 알파 메일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수컷이었다. 그는 관대하고 공평했다. 무리를 지배했고 경쟁자의 도전을 단호하게 물리쳤지만 다른 침팬지를 괴롭히지 않았다. 약자를 보호했고 싸움을 말렸으며 아픈 동료를 돕고 곤경에 빠진 친구를 안심시켰다. 드 발은 그를 ‘진정한 지도자’ 유형으로 규정했다.
반대 유형의 지도자는 “둘 다가 될 수 없다면 사랑받기보다는 남들이 두려워하는 존재가 되는 편이 낫다”는 마키아벨리의 신조를 따르는 ‘무뢰한’이다. 이런 알파 메일은 모두를 공포에 떨게 하고 충성과 복종을 요구하는 데 집착한다. 제인 구달 박사가 야생 영장류를 연구했던 탄자니아 곰베 국립공원의 고블린이라는 침팬지 알파 메일은 다른 개체를 신체적으로 위협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했다. 어느 날 젊은 도전자가 그에게 도전했다. 그러자 다른 침팬지들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가세해 고블린의 손발과 고환을 물어뜯었다. 수의사가 항생제를 투여한 덕에 목숨은 부지했지만 권력을 잃은 고블린은 비참한 삶을 피하지 못했다.
평생 검사였고 1년 반 동안 법무부장관이었던 한동훈 씨가 집권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이 되었다. 그는 알파 메일이 아니다. 오늘 대한민국의 알파 메일은 윤석열 대통령이다. 윤석열이 어떤 유형의 알파 메일인지 우리는 잘 안다. 그는 아모스가 아니라 고블린에 가깝다. 보안관 행동을 거의 하지 않으며 검찰과 경찰을 동원해 법률적 위해를 가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한다.
부자 감세, 복지예산과 서민지원 예산 동결 또는 축소, 국가연구개발예산 삭감, 대통령 해외순방 예산 증액, 간호사법‧양곡관리법‧노란봉투법 등에 대한 거부권 행사, 재벌 총수를 동원한 선거운동 성격의 떡볶이 먹방, 해외순방 중의 폭탄주 술자리, 명품백 수수와 인사 개입 등 배우자의 국정개입 의혹, 다수야당 대표와 국회의원들에 대한 무한 수사, 감사원‧권익위‧검찰을 동원한 공영방송 사유화와 언론 탄압, 국힘당 당 대표 선거에 대한 노골적인 개입, 여당 중진 정치인들의 총선 불출마 압박 등 거의 언제나 자기 자신과 가족과 친한 사람과 사회적 강자의 편에서 개입했다.
시민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김기현 대표를 내쫓고 한동훈을 비대위원장으로 세웠다고 본다. 대통령이 당 대표를 맡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윤석열과 한동훈은 알파 메일 자리를 두고 경쟁했고 또 경쟁하는 이재명 대표에 대해 무한 수사와 기소를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 신체적 위협을 가하는 방식으로 복종과 충성을 요구한 고블린처럼 권력을 휘둘렀지만 자리와 공천을 탐하는 무능한 인물들 말고는 복종하지도 충성하지도 않는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대통령이 지명하는 사람들을 여당 강세 선거구의 국회의원 후보로 낙점하려고 대통령과 비슷한 방식으로 권한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집단적 의사결정 이론에 ‘유권자 이동성(mobility)’이라는 개념이 있다. 어느 시점에서 어느 사회의 유권자 이동성은 집권세력에 실망하는 경우 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의 비율로 나타낼 수 있다. 나는 현 시점에서 우리 사회의 유권자 이동성이 적당한 상태라고 본다. 유권자 이동성이 너무 높으면 정당이 불안정해지고, 이동성이 너무 낮으면 정당과 정치인들이 민심을 무시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국힘당과 민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가 30퍼센트 정도 된다. 상황에 따라 지지 정당을 바꾸는 유권자도 그 비슷하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