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폭망’ 치유 위해 거대 야당이 할 일(2)
진보당의 정책공약은 민주당 계열 정당과 공통점과 차이점을 드러내고 있다. 2024 국회의원선거 10대 공약을 발표하면서도 외교안보 공약은 내놓지 않았다. 2022년 대선 때 발표한 ‘20대 대통령선거 진보당 정책공약집’에서는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 △한미상호방위조약 폐기와 비동맹 중립국 선언, △연합·연방제 통일국가 건설, △모병제 전환, △국가보안법 폐지를 제시한 바 있다. 중도보수 성향의 개혁신당은 민주당과는 어느 정도 교집합이 있지만, 진보당의 공약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10대 정책공약 가운데 안보분야 공약으로 △한미동맹 강화를 통한 동북아 안정, △북한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국방력 증강, △군기지 메가캠프화로 전력 기동성 향상 등을 내걸었다. 현 국제정세는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되고 있고 동아시아지역에서 신냉전이 전개되고 있으며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현실화함에 따라 한반도의 정전이 자칫 열전으로 비화할 위험성마저 안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외교의 기본방향을 서방진영과의 협력으로 설정하고 안보 불확실성에 대비해 국방력을 강화하는 것은 야당으로서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가 미·일과 공동발표한 3국 정상회의의 합의를 완전히 뒤집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국정운영의 한 축인 거대야당의 입장에서 현 남북관계의 파탄 상황과 우리의 국익보다 미국의 국익을 우선한 대미 추종외교, 왜곡된 역사인식에 바탕을 둔 대일 굴욕외교, 장기적 리스크와 중단기 국익을 혼동한 대중 적대외교와 같은 망가진 외교안보의 틀을 그대로 둘 수는 없다. 첫째, 맨 먼저 추진해야 할 일은 남북대화의 복원이다. 정부가 나서지 않는다면 국회 차원에서 이를 추진해야 한다. 국회에 초당파적인 ‘남북관계 특위’를 만들어 남북대화 재개와 이를 통한 ‘9.19군사합의’의 복원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또한 산하에 ‘북핵 소위’를 만들어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을 선제적으로 해소하는 노력을 기울인다. 만약 여당에서 불참한다면, 범야권만이라도 이를 추진해야 한다. 둘째, 한·미 연합훈련의 축소 재조정을 추진한다. ‘한미 워싱턴선언’ 합의사항인 핵협의그룹(NCG)은 국내의 자체 핵무장론을 억누르는 효과가 있으므로 존치하되, 불필요하게 북한을 자극해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는 미 핵공격 잠수함의 수시 기항은 막을 필요가 있다. 또한 자칫 유엔사 전쟁사령부화의 명분을 줄 수 있는 ‘한국-유엔사 회원국 국방장관회담’의 정례화를 중단하도록 해야 한다. 셋째, 국회에 가칭 ‘북방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를 복원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미·중이 합의한 ‘전술적 휴전’이 한중관계를 정상화할 적기이지만, 중국의 불신 때문에 정부만으로 한중 관계를 회복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국회, 특히 거대 야당이 나서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러 관계도 당장 국제사회의 제재 공조에서 이탈하지 못하더라도 러-우 휴전 이후를 대비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에서 발생한 한국선교사 체포 문제는 한-러 관계를 풀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넷째, 한일 관계의 핵심 쟁점인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제3자 변제안은 윤석열 정부의 일방적 조치와 법원 판결 간의 불일치로 이미 파탄이 난 상태이다. (참고: “제3자 변제? 게도, 구럭도 다 잃은 윤석열 대일 외교”) 한·미·일 정상이 합의한 3국 안보협력의 경우 당장 파기가 어렵다고 한다면, 우선순위와 규모 및 속도 조절을 통해 바로잡아 나가도록 윤 정부를 압박하면 된다. 이번 총선을 통해 드러난 민심을 윤석열 대통령이 겸허하게 받아들여 정책 방향과 국정운영의 기조를 바꾸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외교안보 및 대북 정책의 수립과 추진은 행정부 몫이고 국회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통령이 입장을 바꾸지 않는 한 거대 야당이라 하더라도 그릇된 외교안보 정책을 바로잡기는 쉽지 않다. 먼저, 거대 야당은 여야 영수회담 등을 통해 윤 정부의 정책기조 전환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윤 대통령은 자신의 경쟁자였던 제1야당의 대표에 대한 사법처리에만 몰두한 채 국정운영의 동반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레임덕, 더 나아가 데드덕의 신세가 된 윤 대통령이 퇴진 이후를 생각한다면, 제1야당의 대표와 만나 국정운영을 논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윤 대통령의 태도와 입장이 바뀌지 않는다면 통치자의 선의에만 기대며 외교안보 및 남북관계의 현실을 외면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윤 대통령이 끝까지 영수회담을 거부하고 입장을 고수한다면, 거대 야당은 명분 있게 대규모 예산이 수반되는 사업에 대한 동의 거부권을 활용할 수 있다. 예산이 수반되는 다른 분야의 정책과 연동해 윤 정부가 외교안보 및 대북정책의 기조를 변경토록 압박할 필요가 있다. 이번 총선은 지난 2년간 윤석열 정부의 ‘경제 폭망’에 이은 ‘안보 폭망’을 심판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국정운영의 한 축으로서 거대 야당의 책임도 결코 가볍지는 않다. 2027년 대통령 선거까지 향후 3년은 거대 야당이 집권 능력을 보여주는 기간이 되어야 한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