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대 정원 2천명 증원에 반발해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내고 근무지를 떠난지 두달이 다 됐다. 의대생들도 휴학계를 내고 집단으로 수업을 거부하고 있고 의대 교수들은 사직서를 제출했다. 을의 처지에 약자인 환자와 보호자들은 ‘곧 해결되겠지’ 하고 기다리는데 그 희망은 점점 사라지고 이젠 자포자기 상태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와 의료계는 한 치의 양보도 없다. 여당의 총선 참패 뒤 한동안 침묵하던 정부는 의료개혁 추진 의지를 재천명했다. 윤 대통령은 총선 6일 만인 16일 국무회의에서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과 의료 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합리적 의견은 더 챙기고 귀 기울이겠다"고만 짧게 입장을 밝혔다. 총선용 정략적 추진이라는 오해를 받았음에도, 또 총선 후 상황 변화가 생겼음에도 의정 갈등 해소를 위한 새로운 해법은 전혀 안 보인다. "국회와도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했지만 총선 패배로 떨어진 추진 동력을 야당으로부터 얻기 위해 뭘 어떻게 하자는 제안도 없다. 대한의사협회 비대위는 총선 직후 "여당의 참패는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추진을 즉각 중단하라는 국민 심판"이라는 아전인수식 해석을 내놓았다. 이런 인식하에 '원점 재검토'에서 더 나아가 보건복지부 차관 경질, 군 복무기간 단축, 파업권 보장 등과 같은 정치적 요구를 복귀 조건으로 내걸고 있으니 일은 더 꼬일 수밖에 없다. 전북대 의대는 지난 8일 대면 강의를 재개하되 출석이 어려운 학생들을 고려해 비대면 수업도 함께 진행했는데 수업 참여율이 저조하다. 원광대는 아예 수업 참여 계획을 밝히지 않아 자칫하면 집단 유급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 전북대 의대는 대면 수업이 부담스러운 학생들을 위해 교수의 강의를 즉석에서 촬영해 비대면으로 수업하도록 했는데도 참여는 저조하다고 한다. 전북대에 이어 원광대도 더 이상 개강을 미루기 어렵다는 판단하에 지난 15일 수업을 시작하려 했지만 역시 학생들의 수업 참여율이 낮고 휴학이 승인되지 않으면 집단소송도 불사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시간이 많지 않다. 이달 말이 마지노선이다. 지난달 25일부터 사직서를 낸 의대 교수들은 이달 25일부터 실제 현장을 떠날 수 있게 된다. 기간이 정해지지 않은 고용 계약은 해지 통고 한 달이 지나면 효력이 생기는 민법조항 때문이다. 이달 말까지 학교로 돌아오지 않으면 수업일수를 채울 수 없는 의대생들도 집단 유급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대학별 입학정원을 최종 확정해야 하는 시기도 다가온다. 증원 규모 재조정 변수 탓에 대학과 수험생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있다. 의료체계 붕괴에 입시 대혼란이란 폭탄이 기다리고 있다. 총선 결과물로 새로 짜인 정치 지형에서 의료개혁은 좋은 협치 소재이자 국민적 소통 요구의 시험대다. 여야 모두 의료개혁에 원론적으로 같은 의견인 만큼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 정부가 제시하는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위건, 야당이 제안하는 국회 차원의 '민·의·당·정 4자 협의체'건 사회적 기구 구성부터 합의해 이른 시일 내에 대타협안을 마련하길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