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은 영
<늘사랑교회 목사/ 소통과공감 심리상담사>
사람은 자신의 위치나 역량에 따라 평가하거나 생각하는 방향이 다르다. 긍정과 부정의 생각이 각각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컵에 남아 있는 물이 절반쯤 되었을 때 긍정의 생각은 ‘ 아직도 물이 절반이나 남았네. ’ 라고 하고 부정의 생각은 ‘ 물이 절반밖에 남지 않았네. ’ 라고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도 있고 아니면 암흑의 어두움을 상징하는 것으로 불편하면서 살기가 매우 어려운 세상으로 인식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에 따라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것은 자신의 아름다운 생각이 그 근본 속에 들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해 본다. 세상을 불평과 불만 그리고 어렵게 생각하는 경우에는 그만큼 어려움이 자신의 생각에 깊숙하게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해본다.
옛 고사에 이성계와 무학대사의 이야기가 회자하는 것은 안다. 두 사람이 처해 있는 상황에서 야자게임을 했는데 이성계는 무학대사에게 돼지 같다고 했고 무학대사는 이성계에게 부처님 같다고 했는데 결국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는 마음의 속설을 시원스럽게 알려준 것이니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사람은 본디 그 마음이 아름다울 것으로 추리된다.
하지만 현실은 녹녹하지 않다. 아름다운 세상을 보려는 마음은 꿈길 속에 걷는 환상의 빛이요 경치일 것인데 반해 현실 속에는 고난과 고통 그리고 분열과 갈등으로 이루어지는 지극히 아름답지 못한 세상이다.
정치적인 갈등은 국민의 여망과는 다른 당리당략으로 치닫고 있고 심지어는 기부금을 가로채는 범죄자들이 나타나 세상을 혼란스럽게 한다. 일전에 전주 노송동 기부천사금을 가로챘다가 붙잡힌 경우를 보면서 이제 우리 사회의 아름다움이 갈 때까지 가는구나! 라는 심정이 되었다.
정말 아름다운 세상의 기부 천사와 별도로 그 기부금을 노리는 기부절도범이 있다는 상상은 도저히 세상의 아름다움과 먼 이야기가 될 뿐이다. 단시간에 걸친 사건이 해결되어 그나마 다행이지만 아름다운 세상을 보는 눈이 자칫 흐릿해질까 염려스러울 따름이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는 바라보는 시각이 아름다운 세상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꼭 돈과 연계된 기부 등이 아닐지라도 어려움에 처해 있는 상황이 자신 앞에 닥치면 외면하지 않고 직접 뛰어들어 도움의 손길이 함께 했다는 뉴스를 종종 보고 있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마음의 밭을 일구면 참 좋겠다. 그래야 세상을 보는 눈이나 생각들이 아름다움으로 연관되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생각은 계속 부정적인 생각을 낳는다. 이제 긍정의 생각으로 돌아가 마음의 정리를 하게 되면 세상을 보는 눈이 밝아지고 아름다운 것들로만 보이게 된다.
그동안 도움을 받던 사람들이 반대로 도움을 주게 된다. 이러한 세상의 이치는 동그라미처럼 돌고 돌게 된다. 순서가 바뀌기도 하고 처음된 자가 나중이 되고 나중된 자가 처음이 되는 역설적인 상황 전개가 된다.
그리고 역설적인 상황 전개는 다시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처음으로 돌아가기보다는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한 결과론적 생각으로 지속가능한 긍정의 생각이 마음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그만큼 아름다운 생각이나 환경은 긍정의 마인드가 되어 세상의 아름다움을 더욱더 공고하게 해 갈 것이다.
‘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 라는 노래 제목이 있다. 그만큼 아름다운 것들은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곧 조화와 균형 그리고 살맛 나는 세상을 위해 아름답게 보는 긍정의 힘이 지배하는 세상이 최고의 어울림이 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작은 마음의 긍정의 큰 생각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보길 원한다. 마음의 빚으로 사물을 보면서 아름다운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 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