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정 렬
<전) 전주대사대부설고 음악교사
현) 전주소리모아합창단 지휘자
전주대 평생교육원 강사>
‘노세 젊어서 노세’라는 노랫말이 있다. 사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젊은 시절 해 보고 싶었던 것을 노는 것과 연계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지금, 이 순간에도 더 나이를 먹기 전에 놀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 떠오른다.
사람은 일할 나이가 정해져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일할 나이가 지나면 직장에서는 퇴직하게 되고 그 퇴직에 맞춰 쉼과 위안을 얻어 미래에 대한 자신의 삶을 지켜나간다. 물론 경제적인 여유가 있거나 더 일하지 않아도 개의치 않을 수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 대부분은 정년이 넘어서도 일을 해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결혼연령이 길어지면서 자녀들의 출가가 길어지게 되어 정년을 넘어서도 자녀들에 대한 뒷받침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결국, 정년 이후의 생활도 미래에 대한 핑크빛 생활을 즐길만한 시대가 오지 않았음을 피부로 느끼는 시대가 되었다. 아직도 가족을 위한 뒷받침을 해야 하는 강박관념이 퇴직자들의 머리를 짓누르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마음의 괴로움이나 외로움 그리고 불안함은 근본의 마음을 기쁘게 가지면 해소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인생의 전량은 기쁘고 행복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괴로움과 불안의 연속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행복한 것은 아닐지라도 마냥 불안하고 힘들 수만은 없다. 이제 마음의 평안과 기쁜 속 내음을 가지면 힘들고 어려운 일상들을 행복으로 거둬내면서 미래를 가질 수 있는 척도가 된다.
필자는 평생을 노래에 살았다. 특히 전문가적인 입장의 성악을 전공하면서 매번 즐거움속에 일상을 노래로 표현했다. 여기에 고등학교에서 음악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이 또한 음악적인 관습의 노래가 선행되기에 행복한 일상의 단면을 보여주었다.
기쁜 순간이 노래로 승화되고 슬픔이 앞서 노래로 구휼되면서 마음의 평정과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는 기쁨이 되었다. 어느 곳에서나 노래는 기쁜 마음의 발단이 된다. 죽음의 순간에도 노래를 들으면서 임종을 맞이할 때의 느낌은 아직 당해보질 않아서 모르겠지만 상상으로 보면 너무 행복할 것 같다는 느낌이다.
바로 기쁜 마음이 내재하여 있기에 어떤 선율이 울려 퍼지더라도 마음의 평정심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갈등과 분열 그리고 자신들의 집단이나 개인만이 잘났다고 우기는 세상이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여론이 갈라섰는지는 모르지만 기쁜 마음을 가지고 마음속의 분노를 삭이면 평안함이 올 것 같다. 특히 노래 한 곡을 불러보자. 전문 가수 이전에 마음의 위로와 평안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나눔이 노래 한가락 속에 흘러가게 된다.
기쁨과 슬픔은 어찌 보면 백지 한 장 차이다. 기쁨의 단면을 열어보면 그 속에는 기쁨을 갖기 위한 수많은 고초와 노력이 있었을 것이고 슬픔의 단면을 열어보면 그 속에도 역시 슬픔 이전에 기쁘고 행복한 순간의 나날이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두 가지의 극한 상황에서 필자는 기쁜 마음을 갖기 위한 이유를 생각해보면 그것은 바로 행복이라고 말하고 싶다. 행복의 근원은 여러 가지이겠지만 근본은 기쁨이라고 할 수 있다. 당장 마음속에 원망과 분노를 밀어내고 긍정적인 기쁜 마음을 가지게 되면 정신의 가치가 상승하게 되면서 엔돌핀이 돌아 도리어 건강에 유익을 주는 물질이 발생하여 더 기쁜 순간을 맞이하게 되어 이롭게 된다.
마음의 평안을 갖자. 그리고 기쁨을 상시적으로 마음속에 갖고 생활했으면 한다. 부정보다는 긍정이 좋고 슬픔보다는 기쁨이 좋다는 것은 일반상식이지만 이를 애써 외면하면서 항상 불안과 초조로 사는 인생이 있다면 노래 한 곡조에 이를 날려 버리고 기쁜 마음의 승화로 오늘과 내일을 향해 달려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