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성 근
<전, 동북초등학교 교장/ 아이나라협동조합 이사장>
‘만남과 헤어짐’이라는 명제를 두고 많은 상념에 이른다. 사람들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사람 이외의 것들을 통틀어 이와 같은 말을 하면서 이 말의 내에는 기쁨과 슬픔을 유발하는 것으로 비롯된다.
인생의 첫 만남은 물론 엄마의 뱃속에서 생성되면서 동물적인 상황으로 이루어지지만, 바깥세상으로 태어나면서부터 실제적인 세상과 만남이 된다. 물론 기쁨의 만남이 되는 순간이다. 다른 한편에서의 불안정한 태어남이 슬픔이 될 수도 있지만 일단 세상과 만남은 생명체를 가진 인간으로서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와 반대되는 말로 ‘헤어짐’ 이 있다. 세상과 헤어짐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진정한 죽음은 생물학적인 죽음으로 비롯되는 것이지만 사실은 매일 저녁잠을 자면서 호흡하고 있는 것뿐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만남과 헤어짐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 혹자는 만남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이라고 하지만 그것보다는 인위적으로 자아를 인식하면서 깨닫는 존재의 의미를 가지면서 만나는 모든 것들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만남이 될 수 있다.
헤어짐 역시 이러한 존재의식이 가치를 가지고 있을 때 진정한 의미의 헤어짐이라고 할 수 있다. 헤어질 때의 슬픔도 있지만 기쁨도 존재할 수 있다고 보면 만남과 헤어짐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 남녀가 부부의 인연을 맺다가 헤어지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그 뜻을 헤아리기가 매우 어렵지만 미루어 상상해볼 만도 하다. 세기의 결혼이라고 하면서 언론에 대서특필하였다가 이혼에 이르러 다시 언론에 조명되면서 만남이라는 것과 헤어짐이라는 것에 방점을 찍고 그들만의 헤아림을 생각해보면 참 허탈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결혼의 10쌍 중에 4쌍 내외가 헤어진다는 통계를 보면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매우 쉽게 이루어지면서 헤어짐도 쉽게 이루어지는가 본다. 검은 머리가 백발이 되도록 살아야 한다는 말은 그만큼 헤어지지 말고 잘 살아야 한다는 것으로 거의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100% 해어짐이 없어 지낸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요즈음은 그러한 상식을 벗어나게 하였다. 부부간의 만남이 잘못되었다고 판단을 하게 되면 즉시 헤어지는 것이 창피한 것도 아닌, 용기 있는 것도 아닌 당연한 권리처럼 되어 버린 현실이다.
안타깝지만 우리 사회의 현실은 이러한 현상들이 점차 들어가고 있고 급기야는 남녀 간의 만남 자체가 축소되면서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만 생활하는 1인 가구가 급증하게 하는 생활방식을 급격하게 맞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만남은 지속하고 있다. 그 전제는 사랑이다. 사랑으로 만나지 못하고 조건으로 만나게 되면 헤어짐은 필수 불가결한 조건으로 인식되어 만남의 뒤를 배회하게 할 수 있다. 이러한 헤어짐을 원천으로 판단하는 것이 바로 사랑일진대 우리 사회의 만남이 아직도 조건반사적인 만남이 있다 보니 헤어짐이 너무 쉽게 다가오는 것 같다.
잘되면 내 탓 잘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말이 회자한다. 이유야 어쨌든 우리는 부모를 만나 생물학적 뿐만 아니라 가족을 형성하면서 ‘ 즐거운 만남 행복한 가족 ’을 생각하면서 일상의 시간을 보낸다.
결국, 만남의 가장 중요한 구성은 바로 가족일 것이다. 가족은 사랑뿐만 아니라 희생과 고난을 함께 짊어지는 존재이다. 행복하고 기쁜 웃음이 있어 그 즐거움을 배로 늘려갈 수 있고 고난과 아픔은 도리어 감내하는 분량보다 훨씬 더 적게 감당할 수 있는 것도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만남의 일선에 가족이 있고 헤어짐은 다른 사물에 두면서 설 명절이 지났지만, 오늘의 즐겁고 행복한 만남을 위해 가족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날이 계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