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숙
<전주국악협회 회장>
어울림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 말은 언어뿐만 아니라 음악 그리고 인간관계에서도 어울림이라는 말을 하게 된다. 그만큼 자주 어울린다는 것은 친근미를 나타내는 것이며 친숙하다는 관계를 이르는 말이다.
또한, 전혀 다른 것끼리 모여 공통적인 것을 창출하게 하는 것도 어울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어울림이라는 것은 모나지 않는 생활의 긍정을 뜻하기도 한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국악에서도 어울림은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국악은 소리를 나타내는 창, 즉 판소리 계통이 있고 악기 연주를 통한 관현악 등이 있고 이와 함께 사물놀이 같은 리듬악기를 통한 흥겨운 어울림이 소리가 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국악을 모태로 한 전통춤이다.
국악에서의 전통춤은 국악이라는 음악을 배경으로 동작을 통해 우리 가락을 고품위로 표현하는 예술의 행위이다. 더불어 문화적인 측면에서 예술 국악은 전통적인 우리 가락의 모든 것을 종합예술로 승화하여 고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마을 단위에서는 농악 등을 중심으로 신명 나는 한마당 축제를 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신명 나는 어울림에는 바로 우리 가락이 선두에 서기도 한다. 국악의 신명 나는 어울림은 과거 어르신들의 전유물로 보았는데 이제는 퓨전국악이라고 해서 청소년부터 젊은이들도 국악의 한 부류로서 그 존재 의미를 신명 나는 어울림으로 함께 하고 있다.
요즈음 우리사회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같은 사회현상으로 인해 활동이 위축되고 경제적 활동도 축소되면서 어려운 지경에 접어들고 있다. 눈을 뜨고 TV만 켜면 온통 이와 같은 사회현상이 뉴스의 머리기사를 차지하면서 우리 사회의 신명 나는 어울림이 실종되다시피 했다.
인생은 보람과 즐거움은 무엇인가? 부지런히 일하면서 그에 따른 대가로 주어지는 즐거움과 기쁨의 여가활동이 보람일 것이다. 하루와 일주일 한 달을 걸쳐 나 자신에게 주어진 일상들을 모아 문화와 예술을 통한 어울림으로 함께 하고 싶은데 요즈음은 엄두가 나지 않는 것 같다.
일부 언론들의 지극히 부정적인 사회현상의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관련 보도로 사실상 어울림이라는 신명 나는 문화마당이 지극히 위축되면서 거리에서 웃음꽃이 사라지고 집단 어울림에는 무조건식의 부작용을 표출하고 있으니 언제까지 이렇게 될 것인가 무척 안타깝기도 하다.
우리 사회는 고대의 신명 나는 어울림으로 인해 분쟁과 다툼 속에서도 명맥을 유지해 왔다. 바로 국악의 흐름에 따른 신명 나는 춤사위에 따라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온 장수에게 축하 마당을 해주는 것부터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 의식에서도 신명 나는 어울림이 있었다.
지금이라고 해서 당시의 고대사회의 풍습과 다르지는 않다. 현대에서도 즐겁고 유쾌한 일들이 있으면 이를 축하하기 위해 신명 나는 어울림의 한마당이 펼쳐지곤 한다. 아마 이번 영화 오스카상에서 4개 부문을 석권한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관련자들에 대한 축하의 신명 나는 어울림이 당분간 지속하리라고 본다.
어울림은 인간관계에서 영원한 숙제이다. 전혀 다른 생각이 있는 사람들끼리는 잘 어울릴 수는 없지만, 농악에서 서로 다른 악기를 모아 신명 나게 이끌어 가는 어울림처럼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고집스러운 생각을 어울림으로 엮어간다면 공통분모를 찾아 화평한 사회를 이끌어 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오늘도 우리 주변에는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만의 독불장군처럼 생색을 내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사회성을 통해 일상의 모든 것을 영위할 수 있기에 어울림은 인간 생활에서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그래서 평생을 무인도에서 살 수 없는 것처럼 고독한 일상의 범주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울림이라는 단어에 신명이라는 글귀를 넣어 신명 나는 어울림으로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살아야 할 것이다. 오늘도 어울림을 실천하기 위해 작은 북을 쥐고 진도 북춤을 춘다.
한사람, 아니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춤이라고 해도 개인의 개성을 통해 집단의 신명 나는 어울림이 있게 될 때 일상의 평화와 행복이 찾아오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