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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과 괴로움





김 용 철
<전북연예인협회 회장>

 
고전에 보면 성선설과 성악설이 있다. 지금도 성선설이냐 성악설이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즐거움과 괴로움이라는 명제를 던지고 일상의 생활을 이야기하고 싶다. 사람은 본래 선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양심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반면에 사람은 악하게 태어났기에 환경에 따라 선한 생으로 유도하는 것이라고들 한다.


최근 극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보면 본시 악한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성장기의 환경에 따라 비극적인 생활이 지속하다 보니 사회에 감정을 품고 저지르는 일들이 있는 것 같다. 혹자는 악한 심성으로 인해 범죄를 저질렀지만, 선도에 의해 선한 사람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인생은 희로애락이라고 하는 한자성어에 따라 기쁨과 분노 그리고 사랑과 즐거움을 표현하기도 하는데 인생은 희로애락의 반복이라고 하면서 이를 잘 극복하고 유지해 가는 것이 인생을 잘 살았다고 자부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러한 것 중에 가장 상반되면서도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은 바로 즐거움과 괴로움일 것이다. 아무리 돈이 많아 주체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즐거움만 지속할 수는 없다. 편차는 있겠지만 괴로움도 있을 수 있고 생을 영위하는 입장에서 경제적 가치나 부의 창출만이 즐거움을 가져다줄 수 없을 것이다.


괴로움의 일단은 자신의 건강과 직결되기도 한다. 아무리 즐겁고 호기 있게 지내고 싶어도 건강이 허락하지 않으면 역시 괴로움의 연속일 따름이다. 괴로운 인생길은 건강만의 문제가 아니고 주변에 펼쳐지는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다 연계된다.


가정의 해체를 비롯하여 자신과 다른 여러 가지 견해차 때문에 괴로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러한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필자는 오랜 세월 대중가요와 함께했다. 노래를 들으면 아무리 주변이 괴로운 일상이 될지라도 그것은 한낮의 순간일 뿐이요 즐거움이 지속한다. 노래를 들거나 아니면 나 스스로 연주를 하게 되면 즐거움이 상승한다.
잠깐의 괴로움이나 외로움이 밀려온다고 해도 노랫가락 한 소절을 통해 마음의 평정을 갖고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즐거움에는 경제적 이익이나 부의 창출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빈 마음일지라도 가난의 빈민일지라도 노래를 통한 즐거움은 생의 가장 큰 복이 아닐 수 없다.


예전에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 우리나라 음악인이 쓰레기 마을의 어린이들을 모아 합창단을 결성하면서 화제가 된 일이 있었고 언론에 소개되기도 하였다. 주거환경이나 빈약하고 가난에 눌려 있는 어린이들에게 희망의 씨앗을 품어준 것이 바로 노래였다.


노래를 통한 새로운 희망이 그 아이들에게는 즐거움을 선사하게 되었고 결국 이를 통해 빈민촌에서 좀 더 나은 환경으로서 새로운 삶의 가치를 느끼게 할 수 있었다고 하니 이 어찌 노래를 통한 즐거움의 가치가 아니겠는가?
이와같이 가치 있는 노랫가락 한 곡으로 인해 즐거움이 인생의 모든 것을 기쁨으로 승화시킨다. 선한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어쩔 수 없는 환경으로 인해 죄의 늪에 빠질 수 있는 문제를 즐거움의 노랫가락으로 말끔하게 씻어낼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요즈음 우리 사회 분위기가 예전과 같지 않다. 경제적 부의 창출은 고사하고 신종코로나바이러스라고 하는 바이러스19가 중국을 시작으로 창궐하면서 우리나라도 30명 넘게 확진자가 나오고 일부는 퇴원하면서 전 국민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즐거운 일상이 되어야 할 현대의 편리함보다는 여론의 향배에 따라 바이러스19가 미치는 영향으로 인해 괴로운 일상이 지속하기에 마음으로나마 괴로운 일상이 아닌 즐거움 속에 하루의 여정을 다하는 것이 좋을 것 같고 이러한 즐거움을 노랫가락의 한 소절로 바꾸어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오늘도 하루가 즐거움으로 시작되기를 바란다. 괴로움이 마음에 있는 것은 자신에게 좋지 않은 것이기에 억지로라도 웃는 것이 건강에 좋듯이 즐거운 일상을 마음에 품고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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