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 은
<그래픽디자이너>
예전에 영화 제목으로 비슷한 나열의 제목을 본 적이 있다. 필자는 이번 칼럼의 제목을 위와 같이 ‘ 하고 싶은 말, 못할 말, 듣기 싫은 말’ 로 정했다.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사람들, 입이 있어도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입은 있되 못할 말을 하는 사람들로 정의해 보았다.
30대의 인생에서 위와 같은 수식어가 잘 어울리지 않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는 이러한 정의에 비슷하게 들어맞는 것들이 있으니 또래집단이나 같은 이념과 신념으로 뭉친 사람들끼리 유유상종하는 것을 보면 위의 말이 어울린다고 감히 단정할 수밖에 없다.
하고 싶은 말이 입가에 머무르는 사람들이 있다. 말하기 좋아하고 남의 말이나 행위에 대하여 비판하면서 자신은 성자같이 군림하면서 훈계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와 같은 부류의 사람에게 딱 걸리면 정치인들이나 경제인들 모두 재수 옴이 붙었다고 할 만큼 강력한 영향력이 있다.
하고 싶은 말을 자신의 무기로 사는 사람을 정작 살펴보면 다방면에 유식한 것으로 분류되어 아는 것이 참 많고 더불어 정직하며 깨끗한 사람처럼 인식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근본을 보면 이 역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다.
고고한 척 자신은 깨끗하면 거리낄 것이 없는 것처럼 행세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하고 싶은 말을 거두지 못하고 막 입가에서 밖으로 내 보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다. 긍정적인 면이 있을지 모르나 부정적인 면이 또한 우리 사회의 정화보다는 어울림에서 한참 멀어지는 부류가 아닌가 싶다.
이와 함께 못할 말들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말 해서는 안 될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달고 산다. 남이 상처를 받는 우리사회가 문제의식에 사로잡혀 해결 방향은 고사하고 자구 문제점만 밝혀내면서 무조건씩의 비판적인 말을 통해 못 할 말들을 마구 끄집어내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자기통제가 되어 있지 않아 못 할 말인지 해야 할 말인지를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자칫 영웅 심리에 휘말려 주변에서 잘했다고 칭찬받을 수 있는 것이 희열을 느끼며 못할 말이지만 할 말처럼 각색하여야 하는 말들이다.
지금처럼 우리나라라 코로나 19 감염 확산 위기에 놓여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에게 관심을 끌게 하기 위해 못할 말들을 마구 퍼뜨리면서 관심의 조명을 받기 원하는 사람들이다. 가짜뉴스의 근본을 보여주는 행위로 이러한 말들로 인해 정서적인 심리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는 것이니 발본색원할 필요가 있는 말들이다.
한편, 듣기 싫은 말이 있다. 정말 들어야 할 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정치적인 지도자들은 말을 듣기를 거부한다. 어찌 정치뿐이랴? 우리 사회를 주도한다고 하는 자칭 지도자들이 각자의 공간에서 행하는 행위에 대한 말들을 듣기 싫어한다.
아무리 훈계하고 다그쳐도 듣지 않는다. 이러한 부류들을 맹신하는 사람들 또한 듣기 싫어하는 부류의 한사람으로서 이 사람들은 듣기 싫어하는 대신 무수한 말들로 행위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자신만이 옳다고 하는 부류들이다.
듣기 싫어하는 말들은 어쩌면 자신에게 훈계하는 말들이며 다양한 의견속에 합일체를 이루려는 민주 시민사회의 성숙한 언어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듣기 싫어하는 말이라고 편견을 가지면서 우리사회의 여론분열과 행위를 통해 자신들만이 옳다고하니 이런 통탄할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지금 우리사회는 비상 방역의 시대이기에 조화있는 말들이 필요하다. ‘ 하고 싶은 말, 못할 말, 듣기 싫은 말 ’ 들이 무수하게 존재하는 사회에서 적절하게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는 말들의 성찬이 필요할 때이다.
우리가 가진 것이 말뿐인 이 시대에 서로를 인정하면서 화평과 위안을 삼을 말들이 꼭 필요한 시대이다. 오늘도 아침을 열면서 말의 성찬으로 인해 보람있는 하루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