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 영
<행복한피아노음악학원장/플루트연주자>
코로나 19로 인해 필자가 운영하는 학원이 휴원하고 있다. 교육청의 지침뿐만 아니라 사회적 현상에 따른 분위기 때문에 생업이라고 할 수 있는 직업을 쉬고 있어 매우 어렵기도 하다. 하지만 사회의 분위기가 각급 학교마저도 개학을 연기하고 있는 마당에 많은 학생이 모이는 학원 또한 예외일 수 없어 대책 없이 이렇게 쉬고 있다.
은퇴자들의 평균연령이 60세를 전후로 이루어지고 이후 다른 직업을 찾아 70세까지 일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경제적인 취약성 때문에도 그렇지만 노후에 쉬고 있으면 답답하기도 하고 뭔가 활동을 해야 몸도 마음도 건강해진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의가 아닌 다른 여건으로 인해 반강제적으로 일터를 놓고 쉬고 있는 요즈음의 현실을 보면 과연 일한다는 것과 쉰다는 것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새삼스럽게 돌아본다.
사람은 일에서 기쁨을 누리고 쉼에서 안식을 찾는다고 한다. 적절하게 조화와 균형을 이루면서 일하고 쉬는 것을 교차해 가면 건강 우선순위가 될 것이다. 노동이라고 하는 단어에서는 근로라는 글귀가 떠오른다.
근로의 대가인 용역을 제공하면 제화가 손에 쥐게 되는데, 다시 말하면 일을 해야 돈을 벌게 된다는 것인데 요즈음은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되어 그동안 축적해놓았던 것을 까먹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는 일단 일하는 것에서 보람과 긍지를 가진다. 사회에 누를 끼치는 범죄형 일이 아닌 건전하면서 사회 인식의 공동체로 이루어지는 각종 일이 눈 앞에 펼쳐질 때 일하는 기쁨이 보람과 긍지로 나타나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일하는 직업적인 개수가 인터넷에서 보면 약 1만2천 개 정도가 된다고 한다. 나 자신이 모르는 수많은 직업의 종류가 있을 것인데 이렇게 많은 직업의 개수에 동일 직업의 종사자만 해도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즉 전문적인 직종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극소수의 동일 종사자가 있을 것이며 일반적으로 가지는 다수의 직업에는 많은 사람이 종사할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직업의 행태에서 은퇴하고 나면 다음 세대가 비슷한 직업을 가지면서 일하게 된다.
그런데 미래세대에는 이러한 직업의 다양성이 점차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 그동안 사라진 직업과 마찬가지로 고급인력이 필요했던 과학적 체계의 미래산업들이 사람보다는 AI 등의 인공지능에 의해 변화되면서 변모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일에 대해 다른 계통의 새로운 직업이 또 만들어지고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직업적 배열이나 형태가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은 어느 순간에 일에서 손을 떼게 된다. 즉 쉬어야 할 때가 오게 되는 것이다.
나이에 의해 적당한 시기에 은퇴하는 경우는 물론이고 경제의 창출성만 있다면 노후에는 즐길 줄 아는 쉼의 삶이 지속가능한 미래의 앞날이 되고 있다. 이렇게 쉰다는 것은 여유와 낭만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인데 어느 틈인가 우리 사회와 세대에서는 쉼이 곧 안식이요 삶의 활력소가 아닌 염려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 슬픈 일이다.
코로나 19로 인해 쉬어야만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비단 필자만의 문제가 아닌 전 국민의 문제일 것이다. 거리에 즐비한 각종 상점이나 음식점 등이 텅 비어 있고 여행을 가고 싶은 사람들의 쉼에 대한 휴식이 감염병의 두려움으로 중단되고 있는 요즈음에는 탄식만 있을 따름이다.
이제 해외여행은 쉼이 충분한 사람이라고 해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국제항공편이 중단되었고 외국에서도 우리나라에서 입국하는 사람들을 들여보내지 않는다. 물론 한시적이긴 하지만 쉼의 이러한 방향으로 인해 아쉬움의 생각이 일에 몰두하던 시절보다 더 어렵게 느껴진다.
일하고 싶다. 아이들과 함께 노랫소리에 피아노의 선율을 듣고 싶다. 코로나 19가 종식되면 이처럼 일하고 쉬는 조화로운 시간을 잘 활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