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 청 미
<팽나무작은도서관 관장/ 전주서머나교회(기장) 담임목사>
미국의 유명한 사회학자인 데이비드 리즈먼(David Riesman)은 1950년에 『고독한 군중, Lonely Crowd』이란 명저를 펴냈다. <고독한 군중>이란 표현은 대중사회 속에서 수많은 타인에 둘러싸여 살아가면서도 실제로는 고립감으로 번민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는 사람들의 인간 유형을 전통지향형, 내부지향형, 외부지향형으로 구분했는데 전통지향형은 농경사회에서 나타나고 내부지향형은 초기공업화 사회에서 그리고 고도 산업사회에서는 외부지향형 인간이 등장한다고 했다.
이 중 외부지향형 인간은 타인들의 생각과 관심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며 그 집단에서 격리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겉으로는 사교적으로 보이면서도 내면적으로는 고립감과 불안으로 번민하는 사람들을 지칭했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소외다.
하지만 <소외>와 <고독>을 구분하고 싶다. 둘 다 외롭다는 측면에서는 공통점이 있으나 그 외로움을 받아들이는 태도에서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소외>는 주로 수동적인 표현으로 사용되어 <소외 ‘당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에 반해 <고독>은 스스로 찾아가는 측면이 있다. 특히 중세유럽의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자원하여 고독이란 상황에 자신을 몰아넣은 이들이 많았다.
기독교가 로마 제국으로 들어갔을 초기에는 핍박을 받았다. 그러나 313년에 콘스탄틴 대제의 밀라노칙령을 통해 자유를 얻은 후에는 교회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는데 황제와 황제의 모친이 드나드는 교회에 사람들은 저마다 눈도장을 찍기 위해 밀려들었다.
핍박받을 때는 순교의 각오를 가진 사람들만 모이던 교회에 이제는 어중이떠중이가 다 모이게 되었고 교회가 마치 성공을 위한 사교장처럼 시끌벅적해질 무렵 일부 사람들은 오히려 교회를 떠났다.
교회 안에서 있다가 영적으로 부패할까 염려한 결과다. 교회를 떠난 사람들은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 영적 수련을 계속했는데 이것이 바로 수도운동의 시작이다. 그리고 그 토양은 고독이었는데 사막이나 공동묘지 등 인적이 드문 곳에서 스스로 고독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때의 고독은 기쁨으로 자원한 것이다.
성서에 세례 요한이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이 사람은 본래 요한인데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었다고 해서 세례 요한이라 부른다. 이 사람은 사람들에게 나타날 때까지 빈들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빈들은 조용히 자신을 수련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을 제공했고 그곳은 세상의 소음과 완벽하게 차단된 채, 오직 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고 불릴 사람으로 세상에 왔는데 그는 빈 들에서 신과 교체하면서 자신을 준비하였다.
이랬던 요한이 세월이 흘러 그의 나이가 삼십 세쯤 되었을 때 사람들 앞에 나섰고 강력한 회개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때 요한이 전한 말씀에는 사람들을 무릎 꿇게 만드는 능력이 있었는데 그것은 빈들의 고독 속에서 얻은 것이었다.
오래전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피정 시설에 종종 가곤 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일절 말을 하지 않고 침묵으로 오직 대화에만 집중하였다. 이때 마음은 거룩한 평온함으로 가득 차고 묵은 때가 씻겨짐을 느끼곤 하였다.
세상은 너무도 시끄럽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들려오는 많은 소식 거기에 가짜뉴스들까지 사람들은 그 속에서 의미 있는 소리를 듣지 못하여 날마다 휴대폰 벨이 울리기만 기다린다. 이제 소외를 두려워하지 말고 스스로 고독을 즐겨보는 것이 다시는 오지 않을 이 귀중한 시간에 고독이야말로 귀중한 축복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