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순 영
<행복한피아노음악학원장/ 플루트 연주자>
내일은 스승의 날이다. 또한, 잘 인식하고 있지는 않지만, 세종대왕 탄신일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의 개념을 나타내는 이유는 우리의 옛 이야기들 중에 스승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이 회자하면서 세종대왕의 위치에서 그를 스승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자료에 의하면 1965년 청소년 적십자중앙학생협의회(RCY)가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 15일을 스승의 날로 정했는데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이야말로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라 여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늘날에 스승은 존재하는가? 지금은 스승은 없고 선생만 있으며 제자는 없고 학생만 있다는 말이 우리의 마음을 서글프게 한다. 대면하여 직접 가르치는 것이 예전에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 였고 따라서 스승의 그림자조차도 밟지 않는다는 것이 유학의 근본예절이었다.
조선 시대뿐만 아니라 이전 고려 시대에도 스승의 개념은 임금의 지위를 상쇄하는 말이었다. 물론 배움을 위한 가르침의 귀족들이나 지배계층의 상위계층에 이르는 말이다. 하층민들이나 배우지 못한 자들은 스승이라는 존재 자치가 의미 없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근대 조선 이후 100여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스승이라는 존재는 예의상 존경과 신뢰의 대상이 된다. 우리 사회에서 교육의 근간이 되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마친 모든 국민에게는 선생님이라 불리는 스승님들이 존재한다.
아직도 선생님들께 배운 학생들은 선생님을 어려워한다. 다시 말해 선생님이라는 말 이전에 스승님이라는 우리 사회의 뿌리가 깊은 예절의 근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계 어느 곳에서도 부를 수 없는 스승의 노래가 우리나라에는 아주 자랑스럽게 불리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성장기의 제도권에서는 학교라는 틀 안에서 무조건 학생이 되어야 했다. 그곳에서는 선생님이 계셨고 후일 어른이 되었을 때 당시 선생님에 관한 생각과 평가가 스스로 마음속에 존재하기도 했다.
TV에서 스타들이 가장 보고 싶으면서 찾고 싶어 하는 일 순위가 바로 학창 시절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선생님이었으니 가히 스승님의 그림자를 밟지 않아야 한다는 예의 표상이었으리라. 다만 그렇게 존경하던 선생님 역시 우리 사회 구성원의 일부로서 현대의 시대를 함께 하는 분들이었다.
학창 시절 존경하던 선생님을 스승님이라고 표현하면서 본인 역시 선생님이 되었다. 지금은 스승님, 즉 선생님의 위치가 단지 학교라는 틀 안에서의 가르침을 주신 분이라는 한계에서 벗어나 다양한 가르침을 주는 분들에게로 확대되었다.
본인에게 사회의 적응을 할 수 있는 기술적인 산술의 역학을 위해 가르쳐 주신 분들도 모두 선생님으로 칭한다. 직업에 따라 자신의 앞날을 위해 함께 하는 분들의 가르침에 선생님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리고 자신보다 일찍이 더 나은 실력을 갖춘 앞선 분들에게도 선생님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과거 옛적 스승님이라는 표현은 정말 존경과 신뢰와 함께 무한사랑을 나타낼 수 있는 표현의 극치일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선생님과 스승님은 어떤 개념 차이가 있어서 용어를 선택해야 할 것인가가 매우 중요하다. ‘ 선생은 있되 스승이 없고’라는 말을 곱씹어 보면서 진정한 스승으로의 거듭남이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해본다.
필자는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친다. 꿈나무 음악가와 성장기의 학생들에게 두뇌발전과 생활의 효율적인 적응을 위해 음악을 배우는 아이들에게 스승으로서 최고의 경지를 보여주고 싶다. 아이들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선생이 아닌 스승으로서 최선과 최고를 이루어 내고 싶다.
진심으로 존경받고 신뢰감이 있는 어른으로서 아이들을 사랑하고 열정을 다해 함께 배우고 익히는 교육의 현장에서 올바른 인성과 기품이 넘치되 실력 있는 스승이 되고 싶다. 오늘 스승의 날에 다짐 어린 마음으로 아이들을 보면서 스스로 다시 한번 깨달음을 갖도록 노력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