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경 로
<본지 논설위원/ 반태산작은도서관장>
오는 18일은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이다. 40여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잊히지 않는 현재진행형이다. 근대 시민사회로 발돋움하는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날이면서 민주주의를 지킨 성역의 그날이기도 하다.
양극화 시대에 아직도 가해자와 피해자가 동시대에 살면서 가해자는 반성과 뉘우침이 없이 떵떵거리고 있고 그의 추종자들은 가해자 주변에서 얼쩡거리며 여론의 눈치를 보고 있다. 피해자들 역시 한 많은 40여 년을 인내와 고통 속에서 슬픈 나날을 보내고 있다.
우리는 한반도의 시대적 흐름에서 많은 항쟁의 역사를 뒤돌아보았다. 가깝게는 100여 년 전의 동학혁명이 우리지역에서 발효되면서 부정과 부패 그리고 외세를 이겨가면서 나아가서는 국난극복으로 지금의 민주주의와 유사한 사상과 이념의 항쟁이 있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북쪽에서는 200여 년인 19세기에 이미 대표적 농민항쟁 가운데 하나로 홍경래가 난을 일으켰다. 당시에 세도정권으로 인해 정치 기강이 극도로 문란했고 농민층에 대한 지배계층의 수탈은 더욱 강화되었기에 평안도 일대에서 사회변혁을 위해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난을 일으켰던 것인데 흡사 동학농민혁명과 비슷할 수도 있었다.
이후 일제강점기하에서도 3.1만세 운동이나 광주학생운동 등을 비롯한 항쟁과 독립투사의 항쟁이 일제와 맞서서 나라를 되찾는 데 일조를 하였고 광복 후에는 이승만의 독재정권에 맞서 4·19 혁명이 있었지만 군사 반란으로 인하여 4.19 의거로 격하되기도 했다.
이처럼 많은 항쟁의 역사를 가진 한반도에서 격변의 현대사회를 뒤흔든 5.18 민주화 운동이 있었으니 권력욕을 가진 정치군인들의 권력 욕심으로 인해 무수한 시민들이 죽고 다치는 비극의 현장이 되었다.
그런데도 동 시대의 양극화가 점점 심화하면서 일부 정치인이나 인식의 차이가 있는 궤변론자들은 엉뚱한 말로 항쟁의 역사를 외면하거나 왜곡하면서 지탄을 받기도 하고 발포 명령권자로 알려진 전두환 씨의 태도와 생각이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을 보고는 분노를 느끼게 한다.
5월이면 항상 다가오는 5.18 민주화운동에서 이전 5월 11일의 동학혁명기념일과 맞닿아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외세의 침략과 부패한 봉건 제도에 항거하여 궐기한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재조명하고 애국애족 정신을 고양하기 위하여 제정된 동학혁명기념일은 동학농민군이 정읍시 소재 황토현 전투에서 관군을 맞아 대승을 거둔 날인데 동학혁명기념일에는 당시의 농민군이 승리했지만 5.18 당시에는 처참한 피눈물의 날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것은 민주시민 사회가 독재 권력에 의해 항쟁이 되었고 국민과 국토를 위해 존재해야 할 군인들이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며 사살 현장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동학혁명과 같은 시대의 봉건주의도 아닌 현대사회의 민주주의 시대에 있었던 비극의 씨앗을 잉태한 당시의 정치군인들에 의해 일어난 만행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지시를 충실하게 이행한 현장의 군인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위임받은 것처럼 마구잡이로 시민들을 학살했고 학살에 실질적으로 참여한 그때의 군인들은 지금도 우리와 같은 동시대에서 함께 살고 있으니 참 서글픈 현실이다.
5월이면 이처럼 생각나면서 잊혀질 듯 잊히지 않는 것들이 우리 주변에 산재되어 있다. 현재진행형으로 되어 있는 5.18민주화운동은 전두환 씨가 사자(死者)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지만, 아직도 그는 당당하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당당하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민주사회에서의 권력은 일장춘몽일 것이다. 그와 그를 추종하는 권력 집단이 천년만년 가리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이 5월이 가기 전에 과거 40여 년 전의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빌면서 뉘우치고 국민으로 하여금 처분을 기다리는 것이 이제 5월의 영령과 5월이면 다가오는 슬픔을 해소하는 길이다.
오늘도 현재진행형인 5.18을 생각하면서 착잡한 심정을 가진다.